신군부의 학살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항거한지 어느덧 30년. 민주주의의 후퇴 속에서 다시 5.18을 맞는 우리의 감회는 여느 때와는 또 다르다. 더욱이 역사적인 기념일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30주년을 맞았다. 다른 때보다도 더 뜻깊게 치렀어야 할 5.18 30주년 기념식이었다. 5.18 유가족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이주빈
그러나 5.18 30주년은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에 의해 조롱당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일정을 이유로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기념식에 불참했다. 그대신 정운찬 총리가 대독한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와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기대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중도실용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의 굴레를 벗고 우리가 당면한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열린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것입니다.문제 해결을 위해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고, 견해가 갈리고, 이해관계가 다소 달라도 국가와 국민의 입장에 서서 작은 차이를 넘어 대승적 타협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길이자,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선진일류국가의 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5.18 기념사에서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를 비판하는 담대함에 나는 놀랐다. 갑자기 30년전 광주시민들을 향해 ‘폭도’ 운운했던 신군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하필이면 그 자리에서 ‘거리의 정치’를 굳이 비난한 것이 5.18을 ‘거리의 정치’ 취급하는 것으로 느껴진 것은 나만이었을까.
더욱이 나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중도실용주의가 5.18 정신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말을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5.18 정신은 독재와 불의에 대한 ‘타협’이 아닌 ‘항거’였다. 도대체 이명박 정부의 국정지표가 5.18 정신과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런 식으로 갖다붙였는지 모르겠다. 이 대통령의 기념사를 누가 써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5.18의 아픔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허언으로 가득찬 내용이었다.
5.18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조롱은 진작부터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정부는 5.18 기념식의 추모곡으로 애창되어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에서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그대신 "노자 좋구나 오초동남 너른 물에~"로 시작되는, 잔칫집에나 어울린다는 '방아타령' 연주를 집어넣었다가 반발이 일자 취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5.18 기념식을 잔칫집으로 생각한 또 한 곳이 있었다. 한나라당이었다. 정몽준 대표는 서울광장에 마련된 5.18 기념식장에 형형색색의 화환을 보내 빈축을 사자 1시간 뒤에야 조화로 교체하는 소동을 벌였다. 화환을 배달했던 꽃집 사장에 따르면 한나라당에서 원하는대로 해서 보냈다는 것이다.
광주에서의 5.18 30주년 기념식은 결국 두쪽으로 갈라졌다. 5.18 30주년 기념행사위원회는 정부 기념식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음에 따라 기념식에 불참했다. 또 5.18 유족회와 5.18 부상자회, 5.18 구속부상자회 등 5월 3단체 대표들도 항의의 표시로 정부 주관의 5.18 기념식에 불참했다. 그대신 5.18 단체 회원들은 5.18 묘역 입구인 '민주의 문' 아래에 모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이들의 항의가 어찌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 하나에 관한 것이겠는가. 거기에는 5.18을 홀대하는, 그리고 5.18 정신을 거스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항의가 담겨있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5.18 정신을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생각해보았다면 이런 식으로 5.18을 조롱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5.18을 홀대하고 조롱하는 모습을 보인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기 바란다. 다른 수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5.18 기념식은 이렇게 1997년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지난 밤부터 내린 비가 단지 비로 느껴지지 않은 이유를 당신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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