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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삼성의 두 얼굴, 오마이뉴스의 선택은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삼성이 있다. 하나는 편법상속와 X파일에 등장하는 추한 얼굴의 삼성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경제와 산업을 이끌어가는 엔진 역할을 하는 선한 얼굴의 삼성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삼성이 갖고 있는 이 두 얼굴을 자기 입맛에 따라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관행이 자리했다.

진보진영의 삼성 비판자들은 삼성을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는 암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삼성 옹호자들은 삼성이 없는 한국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며 삼성의 역할을 찬미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까지는 아니어도, 각자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 삼성은 다르게 보인다.

언론계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삼성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어온 보수성향 매체들은 삼성의 역할을 부각시키며 어지간한 비리는 눈감아주곤 했다. 반대로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진보성향 매체들은 삼성의 비리를 고발하는데 집중해왔다.
                                          

                                          Ⓒ 권우성

그러나 삼성은 한국경제를 위해 봉사하는 고마운 존재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암적 존재도 아니다. 다른 대다수 대기업들이 그러하듯이 한국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불법과 편법의 관행에 젖어왔던 존재이다. 삼성이 가진 두 개의 얼굴을 함께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삼성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삼성에 대한 필자의 시각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최근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에서 김상봉 교수의 삼성비판 칼럼 게재 문제를 놓고 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논란이 불거진 것은 <경향신문>이었다. <경향신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칼럼 내용을 검토한 박노승 편집국장은 김 교수와 전화통화를 하고 신문사의 어려운 경영현실을 설명하면서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내일 아침 신문에 나의 글이 실리지 않으면 인터넷 언론에 기고하겠다’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결국 김 교수의 칼럼은 <경향신문>에 실리지 못했고,  그 뒤 기자들이 이를 문제삼고 나서 치열한 내부토론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경향신문>은 24일자 지면을 통해 김 교수의 칼럼을 누락한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편집 제작 과정에서 대기업을 의식해 특정기사를 넣고 빼는 것은 언론의 본령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한때나마 신문사의 경영 현실을 먼저 떠올렸음을 독자 여러분께 고백합니다”라고 경향신문은 사과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마이뉴스>에서도 김 교수 칼럼이 게재되지 않은데 대해 내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교수로부터 원고를 건네받은 <오마이뉴스>는 글 가운데 일부 내용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적 판단을 내리고 일부 표현에 대해 수정해 줄 것을 김 교수에게 요청했으나, 김 교수는 이를 거절하여 결국 게재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마이뉴스>에서도 그 뒤 이러한 결과의 적절성에 대한 내부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동안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펴온 두 진보성향 매체에서 있은 이같은 삼성비판 칼럼 논란을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 언론은 삼성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옳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삼성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싶다.

우선 삼성의 광고를 의식하여 기사의 게재여부가 좌우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교과서적인 얘기이지만 현실에서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요즘같이 경영환경이 안좋은 상태에서 언론사들은 삼성이라는 최대 광고주의 압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로 마땅히 나가야할 기사가 누락되는 일이 빚어진다면 언론은 신뢰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경향신문>의 경우 광고 때문에 투명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채 김 교수의 칼럼을 게재하지 않은 것은 일단 잘못이었다. 물론 이를 내부 토론에 붙여 지면을 통한 사과까지 한 것은 용기있는 태도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마 이러한 원칙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언론사에게는 힘든 주문이겠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 언론에게 요구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내가 새로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또 다른 원칙이다.

그것은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도 다른 기사와 마찬가지로 검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삼성을 비판하는 기사는, 삼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게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기사들이 그러하듯이, 삼성 비판 기사 역시도 출고되는 과정에서 적절한 검토와 판단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김상봉 교수의 칼럼은 언론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문제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전 회장과 임원들을 ‘주인’과 ‘머슴’의 관계로 표현하며 이 전 회장이 ‘자기 머슴들의 배설을 억압하고 있다’고 표현한 부분이라든가, 그를 ‘짝퉁 루이16세 폐하’ 로 표현한 부분 등은 법적으로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암이 되어버렸다는 부분이나, 그래서 삼성은 해체되어야 한다는 부분 등은 법의 저촉 여부를 떠나 폭넓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선거날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은 이명박 심판에 열을 올리겠지만, 그 일은 박근혜 전 대표가 누구보다 차분히 잘 해줄 것이니, 진보정당을 키우자는 제언 또한 정치적 반론을 낳을 수 있다.

내가 보더라도 이런 문제들이 발견되는데, 칼럼게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언론사가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내가 알기로는 <오마이뉴스>의 경우 법적으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몇 부분에 대한 수정을 김 교수에게 요청했지만, 김 교수는 이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매체를 통해 전문이 게재된 것이었다. <오마이뉴스>가 삼성으로부터의 광고압박을 의식하여 게재를 거절했다면 역시 비판받아야겠지만, 이번 경우를 보면 법적 명예훼손을 막기 위한 정당한 편집권의 행사였다는 판단이 든다.

삼성을 비판한 글이라고 해서 일자 일획도 고치지 않고 무조건 게재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당한 요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른 모든 기사들이 그러하듯이, 과장되거나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을 경우 수정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을 비판하는 칼럼이라고 해서 그 점에서 유독 성역이 될 이유는 없다.

나는 김상봉 교수의 칼럼에서 삼성을 비판했던 핵심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삼성에 대한 그의 비판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그래서 불법 정치자금, 편법상속, 광고압박 같은 추한 삼성의 모습이 재연된다면 우리 언론은 삼성을 계속 감시하며 비판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삼성이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나는 삼성을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는 암적인 존재’로 규정하거나 해체되어야 할 존재로 보는 김 교수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삼성이 보여온 부정적 행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삼성이 수행하고 있는 경제적 역할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곧 삼성일 수는 없는 것이고, 삼성이 보여온 구태들이 삼성의 전부일 수는 없는 것이다.

보수매체인든 진보매체이든 우리 언론에게는 삼성의 두 얼굴을 함께 보는 균형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닐까. 삼성비판 칼럼의 게재 문제를 놓고 두 진보언론이 겪었던 진통과 고민을 보면서, 혹 있을 비판을 감수하며 필자가 어렵게 꺼내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삼성에게도 주문을 하고 싶다. 비판기사를 실은 언론에게는 삼성이 광고를 끊는다는 압박은 삼성 기사를 둘러싼 논란을 오히려 증폭시켜왔다. 그같은 광고압박 방식은 우리 언론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삼성에게도 결코 득이 되기 어려운 낡은 수단이다. 삼성도 자신들에 대한 비판기사에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바란다. 광고를 무기로 자신에 대한 비판기사를 막으려는 구태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그대신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투명하게 법적 대응을 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은 삼성의 법적 권리이고 누가 탓할 바가 아니다. 삼성비판 기사를 둘러싼 언론 안팎의 논란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삼성의 변화된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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