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노원병 출마에 대해 이런 저런 의견들이 있지만, 다분히 소모적인 논쟁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를 비판하는 주장 가운데는 ‘대의’로 포장한 ‘흔들기’의 경우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 안철수의 행보에서 드러나는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함께 지적할 일이지만, 굳이 출마 지역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일부의 비판은 그리 공정해보이지 않는다.
1. 부산 영도 출마론에 대해
먼저 안철수가 부산 영도에 출마해서 새누리당의 거물인 김무성과 정면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여당의 거물을 거꾸러뜨림으로써 대선 패배 이후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듯한 얘기이다. 그러나 이는 안철수가 4월 보선에 왜 출마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않으려는 주장이다.
다들 알다시피 부산은 새누리당의 절대적 우세 지역이다. 동시에 문재인 의원과 민주당 친노 주류세력이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김무성이라는 거물을, 그것도 박근혜 정부 집권 초기에 이기려면 민주당 친노세력의 도움없이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을 넘어서겠다고 나선 안철수가 선거승리를 위해 민주당의 친노 주류세력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길을 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노무현의 길을 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노무현의 길과 안철수의 길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도전과 패배가 장차 대통령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지만, 안철수에게는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안철수가 부산에서 패배하게 될 경우 민주당 중심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야권질서의 형성은 요원해진다. 지금 안철수에게 부산 영도 출마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야권의 재편이라든가 새로운 정치질서의 형성 같은 문제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경우들이다. 지금 안철수는 노무현의 길을 가면 안된다. 안철수 개인의 당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야권질서의 재편이 지체없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하는 절박한 상황 때문이다.
2. 노원병 선택은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는 그 지역 보선을 노회찬 의원직 상실을 가져온 부당한 판결에 대한 심판의 장으로 삼으려던 구도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인가. 우리는 물론 너나 할 것 없이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한 부당한 판결에 분노하고 노회찬의 의원직 상실을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역구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닌 이상, 그가 누구든지 노원병 출마가 노회찬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 4.11 총선 때 정봉주가 김용민을 사실상 공천했던 모습과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돌아보면 이 문제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노회찬을 안타까워 하는 것과 지금의 정세에서 노원병 선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냉정하게 구분해야 할 일이다.
노원병 보궐선거는 삼성 X파일 사건을 심판하는 선거로만 한정지을 수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시작부터 오만과 독선의 통치를 보여주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경고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가는 징검다리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과제들이 X파일 사건에 대한 심판보다 덜 중요한 일들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한미 FTA 날치기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던진 행동 때문에 의원직을 상실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을 때,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이 보궐선거를 통해 한미 FTA 심판을 하겠다며 통합진보당 후보로 단일화하고 자신들은 무공천할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야권연대는 이미 깨진 상태이다. 거기에는 일차적으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그리고 민주당의 책임이 각기 존재한다. 언제인가는 복원되어야 할 야권연대이지만, 자신들이 야권연대를 깨놓고서 안철수에게만 연대하라며 노원병 출마를 비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노회찬이 출마자격이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가 출마해야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다른 누구의 출마를 갖고 시비 걸 일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정치인은 자신의 출마 지역을 선택할 정치적 귄리를 갖고 있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3.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복잡하게 말하지 말고, 단순하게 이렇게 물어보자. 지난 대선 때 대선후보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섰던 안철수다. 그 과정에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어찌되었든 정권교체를 위해 통 큰 양보를 했던 안철수가 출마할 지역구 하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단 말인가. 정치고 뭐고 떠나서 너무 각박한 것 아닌가.
더구나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를 탓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난 대선 때 안철수에게 양보하라고 압박했던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쯤되면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야 하는 것이 사람사는 정서 아닌가. 김무성 심판도, 삼성 X파일 심판도 다 좋다. 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하겠다고 하는 새 정치도 그에 비해 결코 덜 중요하지 않다. 아니,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앞둔 지금 박근혜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장차 정권교체를 실현할 새로운 판짜기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안철수의 출마에 대해 각자의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는 지혜를 다들 발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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