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새누리당의 기사회생, 문재인-김한길의 오류

나는 국정원이 NLL 대화록을 무단 공개했던 직후인 지난 6월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지난 대선 당시의 경험은, 야권이 NLL 대화록 문제를 갖고 확전하는 것은 아무리 잘해야 본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 바 있다”며, 야권이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정치개입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NLL 대화록 정국으로 말려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지금, 정국은 NLL 대화록을 둘러싼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파행 끝에 어렵게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국가기록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찾지못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다시 그리로 집중되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별로 없어 보인다. 국정조사 피로증이다. 쇠는 달구어졌을 때 두드려야 하는 것인데 시간을 너무 끌어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NLL 대화록 논란에 의해 덮어져버렸다. 이제 국정원 국정조사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국민의 관심 속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국정원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국정조사의 정상적인 진행을 가로막아온 새누리당을 탓해야하겠지만 잘못된 길을 고집한 민주당의 책임 또한 가벼울 수 없다.

그 중요했던 정국의 갈림길에서 민주당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 책임은 문재인 의원과 김한길 대표에게 있다. 국정원의 대화록 무단공개가 있자 문재인 의원은 대화록 원본을 전면 공개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던 당사자로서의 분노는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명예를 지키는 일에 갇혀버려 국정원 정국이 NLL 정국으로 전환되는데 발판을 제공하고 말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같은 문재인 의원의 요구와 보조를 같이한 김한길 대표의 책임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화록 무단공개 사태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를 전략적으로 최우선적인 과제로 유지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결국 회의록 열람.공개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데 앞장섰다. 제1야당 대표로서 방향과 중심을 잃은 오류를 범한 것이었다.

그것이 대화록의 내용을 갖고 다투는 것이든, 대화록의 행방을 찾는 것이든, NLL 대화록이 정국의 주관심사가 되는 것은 새누리당으로서는 내심 반가운 일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야 절대적으로 수세적 입장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NLL 대화록 문제는 밑져야 본전이고 잘하면 여야의 우열을 뒤바꿀 수 있는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흐름에서 보았을 때 현재의 정국은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설치해놓은 덫에 민주당이 걸려든 것으로 보인다. 자칫하면, 아니 이대로 가면 지난 몇 달간 계속되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는 별 성과없이 흐지부지 되고, 대화록이 없다는 사실만 각인된 채 현재의 정국이 마감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몇 달간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본질 면에서 지난해 대선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대선 때에도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은 정권교체의 승산이 높은 길이 아닌 승산이 낮은 길을 고집했다. 그리고 나서도 ‘노무현’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새누리당의 친노 프레임의 덫에 걸려 패배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들도 제기되었지만 문재인 의원과 민주당은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문재인 의원, 그리고 김한길 대표를 필두로 하는 민주당은 참여정부의 명예를 지키는 일을 우선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정국의 주도권을 새누리당에게 넘겨주는 우를 범하였다. 국민여론의 60% 이상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고 받아들였다면 그것으로 논란은 매듭짓고 국정원 문제에 집중했어야 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 위원장 만났을 때 NLL 포기 발언을 한 적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기 위해 여야가 이 엄청난 소동을 벌이고 있는 셈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그것이 어떤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는 일이기에 온통 거기에 매달려야 하는 것인가를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판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기사회생 시켜주었듯이, 그동안 코너에 몰렸던 새누리당은 이제 여유를 되찾은 모습으로 역으로 민주당을 추궁하고 있다.


만약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이 극적으로 찾아진다해도 새누리당이 크게 불리해질 일은 없을 듯하다. 2012년의 총선, 대선, 그리고 2013년의 국정원 정국. 번번이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기사회생시키는 결과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정국은 민주당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제까지 이런 결과를 되풀이 할 것인가. 그동안의 과정은 현 집권세력의 추한 공작정치의 실상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야권의 고질적인 한계도 다시 한번 쌩얼로 드러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