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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

제왕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정관정요>를 보면 당 태종과 정치가 위징의 대화가 이어진다. 태종이 위징에게 무엇을 기준으로 현명한 군주라 하고 어리석은 군주라 하오?”라고 질문했다. 이에 위징은 군주가 영명한 까닭은 널리 듣기 때문이고, 군주가 어리석은 까닭은 편협되게 어떤 한 부분만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답을 한다. 군주된 자는 여러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위징의 말을 다 듣고나서 태종은 그를 극찬했다. 이렇게 군주가 편협되게 한 부분만 믿고 귀를 닫으면 안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여러 제왕학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2014년 대한민국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구축해놓은 성의 안쪽만이 세상의 전부인 양, 그 밖에 있는 세상은 안중에 없는 생각들이 반복해서 전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이버 상의 국론분열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도를 넘어선 폭로성 발언에 대한 단속을 지시했다. 지금 세상에 아직도 국론이라는 것을 찾는 사고도 놀랍지만, 수사기관이 사이버 공간을 감시하라고 대통령이 나서서 지시하는 광경이 당혹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은 즉시 전담수사팀을 발족시켰고, 사이버 사찰에 대한 우려로 많은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 사회에서 신뢰의 위기를 조장하고 소통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 대통령에게 사이버 공간은 여전히 감시와 단속의 대상인 셈이다. 그는 사이버 망명이라는 저항이 이어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은 정치권과 국회가 약속과 맹세를 저버리고 모든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인한 국회 파행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치권, 결국 야당에게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의 장기 표류에는 청와대의 책임도 크다는 세간의 목소리에는 역시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있는 곳 건너편의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는 대통령의 어법은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발언에서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주장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여야의 2차 합의안을 통과시킬 것을 주문했다. 유가족들의 요구를 수용해도 아무런 헌법적·법률적 문제가 없다는 많은 법학자들의 의견에 대통령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늘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귀를 닫은 듯이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언제나 일방적이다. 당나라의 위징이 간언을 했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  

대통령이 원했던 대로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 2차 합의안에다가 약간의 수정만 한 상태로 타결을 보았다. 힘겨루기에서 대통령과 여당이 이겼고, 유가족과 야당이 진 결과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관한 여론의 공감이 여전히 높은 상태임에도 이 같은 결과에 그친 것은 유가족과 야당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이 약한 사람들이라고 이렇게 내몰면 안 된다. 유가족들의 가슴에 한을 남기고, 정치를 제압하려 하고, 시민들을 사이버 망명의 길로 내모는 것이 오늘날의 군주가 할 일은 아니다. 대통령의 세상 그 바깥에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 여기가 이렇게 무시받아도 좋을 외계는 아니다. 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우리가 딴 세상을 살고 있음은 불행한 일이다.

 

*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