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18년의 통치 기간 동안 권력의 ‘2인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5.16 쿠데타의 동지였던 김종필이 자의반 타의반의 외유를 떠난 것도, ‘박정희교 신도’를 자임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도, 박정희를 그림자처럼 보좌했던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숙청당했던 것도 모두 그들이 2인자 행세를 할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위해 충성을 다해왔던 인물이라 해도 그가 ‘포스트 박정희’를 꿈꾸며 세력을 구축한다 싶으면 여지없이 제거하곤 했던 냉정한 박정희였다.
사진=청와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이 스타일을 빼어닮았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 ‘박근혜계’를 이끌었던 시절에도 그는 2인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주요 현안에 대한 박근혜 대표 혹은 비대위원장의 입장은 누구도 대신해서 말할 수가 없었고, 박 대표가 입을 열 때까지는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다. 그의 측근들도 박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나서야 그 내용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가 하면 ‘친박’의 수장이었던 김무성 대표가 ‘비박’으로 내쳐진 것도, 그가 2인자 행세를 한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런 박 대통령이 다시 김무성 대표를 향해 강한 경고장을 내놓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기자간담회까지 마련하면서 여당 대표를 면박을 주었다면, 그것은 대통령 본인의 의중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박 대통령 자신이 개헌논의 반대 입장을 밝힌지 얼마되지 않아 김무성 대표가 개헌을 언급한 것에 박 대통령이 얼마나 불편해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대로 놔두면 앞으로 통제불능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며 차제에 단단히 경고해두기로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수직적 관계이지 결코 수평적 관계가 될 수 없으며, 박근혜 정부 집권세력의 하늘에 태양이 두 개 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이같은 통치방식이 여당 대표와의 관계라는 자신들의 문제를 넘어 스스로를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으로 여기는 잘못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개헌논의를 하고 말고 하는 것은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지 대통령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설혹 대통령이 개헌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국회는 개헌안에 대한 발의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가 개헌 얘기를 꺼낸 김무성 대표를 향해 경고한 것은 국회의 권한을 대통령이 나서서 제약하려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곧 국가라는 식의 잘못된 사고는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발언이 있자마자 검찰과 경찰이 등장했고, 사이버 검열 논란과 산케이신문 지국장에 대한 기소가 있었다. 대통령을 향한 얘기들에 대해 수사기관들을 앞세운 이같은 대응은 자칫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불온시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큰, 위험천만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존중하고 추구해야 할 다양성의 가치를 부정하고 억압으로 사회를 유지하려는 우를 범하기 쉽다.
대통령이 힘을 앞세워 자신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는 방식은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볼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실패한다는 사실을 우리 정치사는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억압적 통치가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만 역사적 경험을 박근혜 대통령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렇게 무서워서야 어디 살겠는가. 어렵게 사는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내고, 국민의 사랑과 존경 속에서 국가를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이렇게 경고만 날리고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는 모습만 보여서야 되겠는가. 나는 이렇게 겁만 주는 무서운 대통령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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