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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 헬스기구까지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이유

당 태종과 신하들이 정사를 논한 기록을 오긍(吳兢)이 정리한 제왕학의 고전 <정관정요>(貞觀政要) 36군신감계’(君臣鑒戒)에서는 군주와 신하가 거울삼아 경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정관 3년에 태종은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주와 신하는 본래 혼란한 세상을 함께 다스리고 안위를 공유해야 하오.

만일 군주가 충성스럽고 선량한 간언을 받아들인다면, 신하는 정직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소.

이것은 군주와 신하가 의기투합하기 때문이며, 옛날부터 중시되었던 것이오.

만일 군주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신하 또한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면서 나라가 위급하여 멸망하지 않을 것을 바란다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오.“  

군주와 신하가 서로를 거울삼아 경계하며 세상을 다스려야할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도 군주와 신하, 그러니까 대통령과 비서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내내 무성하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헬스 트레이너, 심지어 전용 운동기구 구입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주일이 넘게 계속되었다. 청와대 3급 행정관으로 채용된 윤전추 행정관의 실제 역할은 박 대통령의 개인 트레이너가 아닌지, 청와대가 구입한 고가의 운동기구들은 대통령 개인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국회에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 측의 답변이 사실과 달랐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증폭되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에는 직원과 청와대 출입 기자를 위한 운동시설을 갖추고 있다대통령이 사용하는 기구 중에도 노후된 것을 교체했으나 대부분의 비용이 직원 및 출입기자용 운동기구를 교체하는 데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달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해 이러한 설명은 사실이 아니었고, 고가 운동기구 장비 구입은 직원과 기자가 아니라 대부분 대통령이 사용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사실 이런 사안들이 일주일씩이나 정치적 논란 비슷하게 진행되고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장면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건강관리를 위해 전용 운동기구들을 구입할 수도 있는 것이고, 예산이 과도하게 집행되지만 않는다면 그것 갖고 뭐라할 국민들은 아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어디서 어떻게 운동을 하는지, 개인 헬스장이 따로 있는지를 우리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애초에 이 문제가 거론되었던 것이 청와대 3급 행정관 채용의 적절성에 대한 질문이었던만큼, 그것은 청와대의 직제운영과 관련하여 답변을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는 민원소통 창구 역할을 하게 되어있는 청와대 제2 부속실의 기능과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면 그냥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되는 일이었다. 대통령의 운동을 돕는 트레이너 역할도 하면서 수행 등의 업무도 챙기는 여성 비서가 필요했다고 설명하고, 필요하면 청와대 직제 규정을 고치겠다고 했다면 더 이상의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측이 공연히 사실과 다른 답변을 하고, 그 답변이 사실이 아님을 안 야당은 그 이상의 추궁을 하는 상황까지 가버린 것이다. 결국은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언제나 비밀이 지켜져야 하고 공개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비밀주의가 낳은 자업자득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대통령의 7시간논란과 닮은 꼴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416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묻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김기춘 비서실장은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의 위치는 알 수 없다며 자신도 모른다는 식의 답변으로 일관해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그 이후에도 대통령의 행적을 밝히라는 요구에 대해 청와대 측은 함구로 일관했고, 워낙 그러니까 세간에서는 뭔가 말못할 사연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들이 고개를 들었다. 급기야는 <산케이신문> 류의 소설같은 기사까지 등장했다. 국가적 재앙이 있던 날 대통령의 행적을 굳이 밝히면 안되는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차라리 김기춘 실장이 알고는 있지만 문제가 될 일은 없었고, 대통령의 위치를 밝히는 것은 다른 문제들이 있어 곤란하다는 식으로라도 답했다면 의심의 정도는 달랐을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가적 재앙이 발생했던 상황에서도 대통령의 행방을 몰랐던 것처럼 말하니 논란이 더 커졌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근래 들어 박 대통령 주변과 관련된 의문이 생겨나면 청와대 사람들은 이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논란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과 관련된 일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는 과도한 비밀주의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거기에는, 대통령은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될 존재라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비서진들이 그같은 의식과 판단을 갖고 일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그러한 청와대 문화를 낳은 대통령 자신의 책임도 함께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들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태종은 군주와 신하가 거울삼아 경계해야 함을 말했거늘, 청와대 비서들의 마음에 걸려있는 거울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