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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생각들

내가 영화 <라디오스타>를 떠올린 이유

영화 '라디오스타'를 기억하십니까. 1988년 가요왕에 올랐던 가수 최곤(박중훈)은 문제를 계속 일으켜 미사리 카페촌을 전전하는 무명가수로 전락했죠. 그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친구 김 국장에게 부탁해 강원도 영월에 있는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DJ를 맡게 됩니다.

그러나 최곤은 낡은 기계들 속에서 무성의한 방송을 했고
, 영월 주민들은 라디오를 꺼버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방의 김양이 울면서 엄마에게 보고싶다는 진솔한 고백을 할 때부터 최곤과 강 PD는 진심으로 방송을 하게 됩니다. 이후 그들은 진심을 다해 방송을 하여 프로그램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고 일약 전국 방송이 됩니다. 정말 기억에 남는 훈훈하고 감동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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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이었습니다. 저는 '라디오스타'를 떠올리며 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케이블 TV로부터 매주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방송을 하러 갔습니다. 생긴지 몇 년 안된 방송사라 스튜디오는 비좁았고 방송도중에 볼 시계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MC는 대본을 못받았다며 자기가 질문해야할 내용을 3분 전에야 저에게 물었고, 방송시간이 안맞아서 예정된 질문을 건너뛰다보니 내용 정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공중파 시절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열악한 여건이었습니다.

갈고닦은 저의 순발력으로 무사히 방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 영월의 한 낡은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시작한 최곤이 떠올랐습니다. 저 또한 공중파 TV를 누비며, 채널 돌리면 유 박사만 나오더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를 부르는 공중파 TV는 없습니다. 최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마약과 폭행이 아니라, MB정부와 코드가 안맞는다는 이유 때문에 못나가는 점일 것입니다.


최곤이 영월에서 새로운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어 새로운 인기를 누리게 되었듯이, 저도 시사평론가로서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얼마전 저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인물기사에서는 제가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제목을 달아주었더군요. 제가 활동하는 무대가 과거와는 달리 조금도 화려하지 않지만, 저는 시사평론가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는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강 PD의 역할을 대신하는 수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이 생겨났습니다.

물론 과거처럼 넓고 화려한 스튜디오에서 유명 아나운서들과 방송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 그대신 좁은 스튜디오에서 익숙하지 않은 MC와 방송을 합니다. 어쩌면 지난 10년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장입니다. PD는 작가 일까지 겸하고 있었고 MC는 새벽부터 낮까지 혼자 진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방송은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방송은 만들어지는구나
.... 세상을 또 하나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속적 의미에서 잘나가던 시절보다 뽀다구는 나지 않지만, 새로운 현장의 바닥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하려합니다. 자기가 누려온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나이 오십이 되어서 새로 배우고 있습니다.


저의 안드로이드폰용 개인 어플 <올댓 시사 3.0>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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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인터넷 개인방송이 매일 밤 11시에 아프리카 TV를 통해 생방송됩니다. 다른 시간대에는 수시로 재방송이 나갑니다. 아프리카 TV 앱을 다운받으면 아이폰을 통해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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