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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KBS 수신료 인상, 한나라당의 뜨거운 감자


한나라당이 6월 국회에서 시도했던 KBS 수신료 인상이 무산되었다. 한나라당은 KBS 수신료를 현행 2500원에서 3500원으로 1천원 올리는 안을 국회 문화체육관광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처리하려 했지만, 민주당의 완강한 실력저지 앞에서 더 이상 밀어붙이지 못했다. 한나라당으로서도 상임위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강행처리하거나 국회의장 직권상정까지 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게 따르는 사안이어서 결국 6월 국회 처리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KBS 수신료 인상은 일차적으로 물가인상의 문제이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비등한 상황에서 수신료 40% 인상을 밀어붙이는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자칫 사후의 비판여론을 혼자 뒤집어쓸 위험이 큰 행위이다. 게다가 KBS는 현재 공정성의 상실에 대한 광범한 비판에 직면해있어 수신료 인상안 강행처리는 KBS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많은 시청자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마침 한나라당이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시점에 KBS는 ‘백선엽 다큐’를 방송하여 ‘친일미화’라는 반발을 초래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좋았던 분위기는 “친일미화하는 방송에 시청료 인상이 웬말이냐”는 반발로 이어졌다. 여당은 6월 국회에서 일단 칼을 뽑았지만, 그 칼을 휘두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를 않았던 것이다.

한나라당의 수신료 인상안 처리 저지에 나선 민주당 (사진= 남소연)


이제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결론은 9월 정기국회에서 내려지게 되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7, 8월중에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신료 인상여부를 결론내자는 것이다. 여당이 원하든 아니든 간에 일정은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새로운 돌발변수가 등장했다. 민주당 대표실에 대한 도청을 한 것이 KBS 기자의 소행이라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 아직 민주당 측에서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공식적으로 단언하지는 않고 있지만, 여러 정황상 심증을 거의 굳히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한선교 의원이 입수한 녹취록이 KBS 측으로부터 건네진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는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만약 민주당의 판단대로 도청이 KBS 측의 소행이었던 것으로 판명날 경우, 수신료 인상문제를 둘러싼 국면은 전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그때는 수신료 인상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KBS의 쇄신이 우선적인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당장 불법도청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인규 사장을 비롯한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 요구가 강력히 제기될 것이다. 그리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고 여당과 정치적으로 유착하고 있는 KBS의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쇄신요구가 쇄도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KBS의 현경영진이 사퇴한 가운데 새로운 사장 선임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갈등이 상당 기간 확산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KBS의 공정성 확보방안에 대한 논의가 우선적인 과제로 부상하고, 수신료 인상 문제는 그 문제가 명확하게 정리될 때까지 뒤로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은 KBS 김인규 체제의 무리수가 스스로 수신료 인상을 물건너가게 만든,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은 상황을 의미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한나라당으로서도 발을 빼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웠던 수신료 인상문제를 밀어붙이기에는 명분 자체가 상실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애당초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 인상의 총대를 멨던 것은 자신에게 큰 이득이 있다기 보다는 KBS에 대한 일종의 의리 차원에서의 보은적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김인규 사장이 그동안 KBS를 한나라당 입맛에 맞게 바꾸어 놓았는데, 이제 더 이상 수신료 인상을 미뤄둘 수 없는 때가 되었다는 판단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내년에 들어가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수신료 인상을 처리하기가 더 부담스러워지니까. 조속히 매듭지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나라당에게도 KBS 수신료 인상은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리고 있다. 만약 KBS 측의 도청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한나라당은 이 뜨거운 감자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칫 KBS를 도와주려다가 자신이 크게 당하는 상황을 우려하게 될 것이다. 이제 KBS 수신료 인상은 한 방송사의 수신료 차원을 넘어서는 가장 정치적인 사안이 되고 있다. 도청의혹의 결말은 KBS를 다시 정치의 중심에 가져다 놓게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런 마당에 한나라당이 더 이상 KBS 수신료 인상의 총대를 메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내년 총선을 포기하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이제 자신이 살려면 KBS 를 손에서 내려놔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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