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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KBS 장 기자, ‘도청’의 주홍글씨가 두렵지 않습니까

KBS 00 기자께. 

요즘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으십니까. 한번도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 사이에 이렇게 공개적인 편지를 쓰게 되어 미안합니다. 그만큼 하고 싶은, 그것도 다른 많은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은가보다 하고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사실 장 기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최근 언론을 통해 33살의 막내기자라는 표현을 접했고, 지금 도청의혹과 관련하여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정도가 제가 장 기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만약 기자가 도청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분노가 솟구쳤다가도, KBS의 사장과 간부들은 다 빠져버린 상태에서 막내기자가 혼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광경에 대한 연민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KBS 본관 수신료 인상 광고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유성호)

장 기자. 저는 장 기자가 도청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누구보다 장 기자가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섣부르게 제가 예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장 기자가 지난 주 영등포경찰서에 출두해서 도청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는 진술을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이곳저곳을 다녀보면 “KBS가 도청을 했다며?”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KBS의 해명과는 상관없이 시중에서는 KBS가 도청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사 IN>이 국회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2.9%'KBS가 도청에 연루됐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바로 장 기자와 같은 일을 하는 동료기자들 대부분 역시, KBS의 도청을 사실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그 KBS 도청의혹의 중심에 지금 장 기자가 자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당사자는 도청을 안했다 하는데, 세상은 도청을 했다고 믿고 있으니 말입니다. 명확히 가려야 합니다. 장 기자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할 것이고, 반대로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 꺼내놓아서 진실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이를 나서서 해야 할 장본인은 바로 장 기자입니다. 장 기자는 도청의혹이 제기된 과정과 관련하여 알고 있는 모든 내용들을 세상에 다 꺼내놓음으로써 분명한 결말을 보아야 합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라면, 그럴수록 수사에 적극적으로 응해서 진상을 가리고 누명을 벗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모든 것을 털어놓는 양심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장 기자가 보여준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지난 14일 밤 장 기자는 밤 9시에 영등포 경찰서에 출두했다더군요. 아마도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심야에 시작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구나 밤 12시가 되자 장 기자는 더 이상의 조사를 거절하고 돌아갔다더군요. 저라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면 분해서라도 밤샘조사를 통해서라도 진상을 가리려 했을텐데 장 기자는 방법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장 기자가 도청을 했는지 여부를 놓고 세상이 떠들썩한데도 단 한번 앞에 나타나지 않는 모습도 의아합니다. 굳이 경찰서까지 가지 않고서도 직접 나서서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황과 증거들을 제시할 법도 한데 말입니다. 

어쩌면 경찰조사 이전에는 말을 아끼려는 전략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장 기자는 경찰조사에 대한 법적 대응은 변호사와 함께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상식적 대응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장 기자가 회식 후에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한꺼번에 분실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이 많지 않더군요.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하필이면 그 시점에 분실할 확률, 그것도 두 기기를 동시에 분실할 확률을 감안하면, 정말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도 절묘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분실된 노트북과 휴대전화는 다른 기자들의 통상적인 경우와는 달리 분실신고조차 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증거인멸 의혹을 사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장 기자의 상세한 소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상대는 경찰만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국민입니다. 경찰에 가서 무엇이라고 진술하든 간에, 우선은 국민을 상대로 의혹이 풀릴 수 있도록 설명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장 기자가 치밀하게 법적 대비를 해야 하는 개인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KBS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장 기자가 앞으로 나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민주당 회의가 열렸을 때 자신이 했었던 일, 문제의 녹취록과 자신의 연관성 여부, 도청의혹이 제기된 이후 KBS 내부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던 일들, 노트북과 휴대전화 동시분실의 경위..... 다 털어놓으십시오. 장 기자가 누명을 쓰고 있었다면 세상은 장 기자의 소상한 설명을 듣고 그 억울함을 풀어줄 것입니다. 세상은 정말 억울한 사람을 매장할 정도로 비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반대로 장 기자가 연루되어 있었다면 장 기자는 이제라도 양심에 따라 고백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경우가 될지 저는 예단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장 기자에게는 경찰조사를 잘 받는 것보다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설혹 장 기자가 법적으로 기소를 피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간다고 해도, 국민과 82.9%의 동료 기자들이 의심을 거두지 않는한 도청기자라는 주홍글씨가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장 기자가 개인적으로 어떤 이유로 기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33살의 젊은 기자라면 언론인으로서 얼마나 꿈과 포부가 많겠습니까. ‘도청기자라는 주홍글씨가 그 꿈을 가로막는 씻을 수 없는 자국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에 하나 장 기자가 이번 사건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제라도 다 털어놓고 용서를 빌면 국민이 받아줄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을 용기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면 언론인으로서 다시 새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장 기자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김인규 사장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내려와야 할 사람에 불과합니다. 모름지기 언론인이라면 국민이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만 보지 말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내다보십시오. 제가 인생 선배로서 장 기자께 건네는 마지막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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