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그동안 줄곧 선두자리를 지키던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처음으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에게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신문과 엠브레인이 지난10~11일 이틀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나 후보는 47.6%를 얻어 44.5%를 얻은 박 후보를 3.1%p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특히 나 후보는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적 투표층에서도 48.8%를 얻어 45.3%를 얻은 박 후보를 3.5%p 앞섰다.
이미 지난 8일 한겨레신문과 KOSI(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 나 후보는 42.8%로 박 후보의 48.8%와 6%p 차이를 보이며 격차를 좁혔고, 적극적 투표층에서는 나 후보가47.6%를 얻어 48.6%를 얻은 박 후보를 1%p까지 따라잡은 바 있다. 따라서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최근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원순 후보 (사진=유성호)
그동안 나 후보를 10% 가량 앞서왔던 박 후보로서는 비상을 걸어야할 상황이다. 선거전에서 판세가 변하는 것은 여러 차례 있는 일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현재의 추세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나 후보의 경우 지지층의 견고함이 눈에 띄는데 비해 박 후보의 경우는 견고하지 못했던 지지층이 이완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나 후보 지지층은 빠르게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범여권의 분열이 수습되고 박근혜 전 대표가 나 후보 지원의사를 밝히면서 결집하기 시작했던 이들은 한나라당의 네거티브공세로 박 후보가 상처를 입으면서 보다 강고한 결집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무당파층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박 후보 지지층은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 속에서 박 후보가 수세적.방어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이완되거나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후보의 무당파 지지층은 조그마한 상처에도 견디지 못할만큼 견고하지 못했던 것이다.결국 그것이 나 후보의 지지율 상승, 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판세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소속 시민후보의 한계 드러나
이제는 지나가버린 얘기이지만, 박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던 것은 현재의 상황을 초래한 일차적 원인이다. 필자는 선거에서 정당조직이 갖는 힘을 활용하여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박 후보가 명분상의 손상을 다소 입더라도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권유를 한 바 있다. 박원순 후보의 민주당 입당을 권유하는 이유
그러나 박 후보는 무소속 시민후보로 남았다. 민주당에 입당할 경우 오히려 그를 지지하고 있는 무당파층이 이탈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혀 견고하지 않은 무당파층의 지지의사를 중심에 놓고 입당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린 것은 중대한 오류였다. 무당파층은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의사는 밝히면서도 투표장에는 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조그마한 변화에도 지지대상을 바꾸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 무당파층을 잡기 위해 민주당의 견고한 지지층을 결집시키지 못하는 선택을 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기호 2번과 기호 10번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인가는 선거를 치러본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다.
만약 박 후보가 민주당 후보였다면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서는 당 차원에서 방어하고 반격을 취하며, 박 후보는 자신의 새로운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전하는 역할분담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박 후보는 자신을 향한 공세에 대해 혼자서 방어하고 해명하는데 매달려서 정작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내놓지 못해왔고, 이는 결국 선거주도권을 나 후보에게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일. 이제 민주당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구성원들이 총력을 다해 박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이완되어 있는 기호 2번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나서주어야 한다. 박 후보가 끝내 입당하지 않은데 대한 민주당 지지층 일각의 곱지않은 시선이 해소되어 그들이 투표장에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주어야 한다. 물론 민주당 이외의 민주노동당,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다른 야당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박 후보가 민주당의 총력지원만 바라보고 있을 때는 아니다. 박 후보 측도 선거전략을 수정하고 박 후보의 대응방식을 변화시키는데 나서야 한다. 박 후보가 포지티브 선거를 표방한 것은 시민후보로서 보기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상대 후보에 대한 무장해제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신을 향한 공세에 대한 해명에만 매달리면서 상대 후보의 여러 정치적.정책적 약점들에 대해서조차 공격을 삼가하는 것은 상호 검증의 책임을 포기하는 일이다. 지지층들에게는 선거 승리에 대한 의지의 결여로 비쳐질 수 있고, 이는 지지층의 결집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선거는 독하게 해야 한다. 근거없는 네거티브 공세를 따라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 후보의 여러 행적(자위대 행사 참석, 사학법 개정 반대, 투기의혹...), 무상급식이나 한강르네상스 정책에 대한 공격을 통해 선거쟁점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점잖고 품위있게 선거를 치러 승리할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만, 그래서는 대립각을 세울 수 없고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6.2 선거에서 한명숙 전 총리의 사례가 보여준 바 있다. 먼저 박 후보가 바뀌는 모습을 보여야 지지층이 결집할 수 있음을 박 후보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안철수 원장이 지원에 나서야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안철수 원장의 지원이다. 이제 판세는 박 후보가 안철수 원장에게 지원의 SOS를 쳐야 하는 상황으로 되었다. 선거승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상태에서 박 후보는 안 원장에게 선거지원을 요청하여 ‘안풍’에 힘입어 나 후보의 역전을 막아야 할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물론 안 원장이 지원에 나서지 않고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판세라면 굳이 그러한 요청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현재 전개되는 판세로 보아서는 박 후보가 염치를 무릅써야 할 상황으로 판단된다.
안 원장은 이미 박 후보의 지원 요청시 "그 때 가서 생각해보겠다"고 말해 지원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이다. 박 후보를 위해 큰 양보했던 안 원장이 박 후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 요청의 손길을 내밀 경우 이를 뿌리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나 후보의 역전시도를 막고 불안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답은 바로 안철수 원장의 지원이다. 결국 서울시장 선거의 승부는 최종적으로 안 원장의 등장 여부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이를 주저할 이유는 없다.
한나라당은 박 후보를 향한 무차별적인 네거티브 공세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여당의 네거티브 선거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당장 효과를 보고있는데 그들이 이를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박 후보가 선거전략의 수정과 특단의 대책없이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최종적으로 역전당하고 선거를 마칠 가능성이 높다. 박 후보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제까지의 선거전략을 재검토하기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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