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급 비서실장. 요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기춘 대원군’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우선 그는 까마득한 검찰 후배를 총리 후보자로 두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과거 “나는 김기춘에 비하면 발바닥이다”라며 김 실장을 칭송했던 것은 이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안 후보자는 총리가 되더라도 김 실장 아래에 있는 발바닥 총리인 셈이다. 같은 경남 출신에, 같은 대학교 후배인 안 후보자는 평소 존경하던 김 실장을 모시는 총리가 될 것이라는게 세간의 시선이다.
사진= 청와대
까마득한 후배 총리를 두게 된 김 실장은 이번 인적 쇄신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던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퇴진했어도 김 실장만은 오히려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이제는 김 실장이 NSC 회의 참석을 통해 안보정책에까지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안대희 후보자 내정에도 김 실장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굳이 그동안 김 실장의 역할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는 박근혜 정부의 살아있는 권력임에 분명하다. 역대 어느 정권을 돌아보더라도 비서실장에게 지금처럼 막강한 힘이 실리는 일도 보기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김 실장의 힘은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계획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조계획서에 먼저 증인을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국조계획서를 일단 채택하고 증인 문제는 국조특위를 일단 가동한 후 기초조사를 거쳐 추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이같은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다들 알고 있듯이 김기춘 실장의 증인채택 문제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요구하는 김기춘 실장의 증인 채택을 막기 위해 완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비서실장이 이 문제(세월호 참사)에 대해 관여한 게 없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어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도 "국조계획서에 미리 증인을 규정한다는 것은 전후가 뒤바뀐 것이어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김기춘 실장의 증인채택은 그동안 진상조사에 성역은 없다고 강조해온 새누리당에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성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국정조사계획서의 채택 자체가 진통을 겪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당연히 여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자칫하면 여당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 김기춘 실장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철저한 진상규명에 동의하는 입장을 취해온 새누리당으로서도 김기춘 실장 증인 채택을 완강히 거부하는 모습은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새누리당 지도부는 김 실장이 증인석에 앉는 일이 없도록 모든 힘을 다해 막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장면이 아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책임자가 증인이 되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런 광경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새누리당은 김 실장이 세월호 참사에 직접 관여한 일이 없다며 증인 채택을 거부하고 있지만, 도대체 국가적 참사 앞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의 관여 여부를 따지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대응은 어떠했고 거기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대통령은 제대로 보고를 받고 적절한 지시를 내렸는지를 가리는 것은 진상규명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청와대 비서실의 책임자가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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