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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정현 수석의 KBS 통제, 박 대통령이 책임물어야

오래 전의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에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을 이끌고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마 한 10년은 된 것 같다. 이정현이라고 하는 사람이 전화를 했다. 자신을 박근혜 대표님을 모시고 있다고 소개한 그는, 나하고는 한번도 인연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박근혜 대표를 비판한 나의 글을 <오마이뉴스>에서 읽고 전화를 한건데, 그 내용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자기가 모시고 있는 대표를 비판했다고 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런 식의 항의를 하려하다니. 나는 불쾌함을 표시하며 이런 무례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문제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당황한 듯 그러면 그냥 끊겠다며 하려던 말을 중단한체 그냥 끊었다. 10년은 지났을 일이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내 머리 속에도 매우 보기드문 일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이정현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공보책임을 맡고 있던 그가 방송사에 거칠은 전화를 자주 걸곤 한다는 얘기를 이곳저곳에서 듣곤 했다. 어느 날은 한 종편 방송국에 갔더니 그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와 왜 박근혜 후보를 자꾸 비판하느냐며 거칠게 항의를 해서 방송국 안에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한 작가로부터 들었다. 그 무렵 비슷한 얘기 다른 방송국에 가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기억에 이정현이라는 정치인의 이름은 방송사에 전화를 잘 거는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홍보수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 떠올랐던 첫 생각은, 거 참 고약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자리도 아닌 홍보수석 자리에 올랐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전화를 방송사에 걸어 사사건건 간섭과 통제를 할까. 그 걱정부터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 그는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맹활약을 했나보다. 참사가 발생하고 며칠이 지난 421일께 이정현 수석은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한 번 도와주소. 국가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제 삼는 것은 조금 뒤에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해야 하는 시점이라 강조하면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입니다라는 자신의 주장을 했다고도 한다. 보도내용과 관련하여 청와대 수석이 기자들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는 행동은 당연히 기자들에 대한 간섭과 압박으로 비판받을 일이었다. 정부책임론을 펴지 말아달라는 얘기 아니었던가 

결국은 어제(16)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의 폭로를 통해 이정현 수석 등에 의한 음습한 방송통제의 실상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김 전 국장은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이정현 수석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한창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비판을 나중에 하더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면서 비판 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KBS가 정부 비판을 이어가자, 길환영 사장의 직접 지시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길 사장이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 청와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 전 국장은 자신의 국장직 사퇴도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전화를 받고는 이를 거역하면 나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이건 대통령의 뜻이다고 말하면서 길 사장이 울었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동안 강력한 의심을 사왔던 청와대-KBS의 커넥션의 실상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청와대는 KBS의 보도와 인사에 간섭하거나 통제하고 KBS 사장이 이를 진행하는 역할을 하는 관계가 세상에 드러났다. 최근 임명된 백운기 신임 보도국장이 임명되기 직전에 청와대 근처로 가서 만났다는 청와대 인사도 그의 동창인 이정현 수석이 아니냐는 의혹을 KBS 새 노조 등에서는 제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서 정부의 책임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청와대가 이런 식의 통제를 했다면 이는 길영환 사장 뿐 아니라 청와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간섭의 핵심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이정현 수석은 물론이고 그를 지휘하는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할 일이다. 세월초 참사의 진상규명을 하는 작업에는 정부책임을 덮으려 했던 왜곡 축소 보도의 경위를 가리는 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 배경에 청와대가 작용했다면 관련 인물들에 대한 엄정한 정치적,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방송법 105조에 따르면 부당하게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청와대의 방송통제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답을 해야 할 일이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역할을 해온 홍보수석이 논란의 주인공이 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그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청와대는 언론통제라는 잘못된 적폐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어디 이런 일이 KBS에서만 있었겠는가. 이번 일은 정권에 의한 언론통제를 끊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의 희생을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계기로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