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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PC 암호를 잃어버렸을 때의 낭패감

평소 집에서 사용하는 두 대의 PC에 사용자 계정 암호를 걸어놓곤 합니다. 암호를 입력하지 않고서는 PC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해놓은 것이죠.

집에서 사용하는 PC에 굳이 암호를 걸어놓는 이유는 아이들 때문입니다. PC를 하고 싶은 욕망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정작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은 모르는 암호를 걸어놓았습니다. 특히 부모가 집에 없을 때라든가, 밤에 잠들고 난 뒤에 대한 대비책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부모가 자기들만 아는 암호로 PC를 잠궈놓는데 대한 불만이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토요일 돌아가신 장인 어른 성묘를 위해 위해 큰 딸 아이만 남겨놓고 다들 지방에 갔습니다. 큰 아이는 친구들과 학교 수행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해서 남겨두고 갔습니다. 그리고 집이 비어있으니 우리 집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길을 떠난 저에게 딸 아이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ppt 작업을 해야하니까 PC 암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밤에 집에 가서 다시 암호를 바꿀 생각으로 일단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밤에 집에 도착한 이후 문제가 발생한 것을 알았습니다. 암호를 다시 바꿔놓기 위해 제어판에 들어가서 암호변경을 시도하는데 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입력한 현재의 암호가 틀리다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해서 다시 부팅을 했더니 그 이후에는 PC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용자 계정에 암호를 입력해도 틀리다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암호가 바뀌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당장 아이를 추궁했죠. 네가 손댔느냐고. 상상력이 동원되었습니다. 부모가 암호를 바꾸어 놓기 전에 자기만 아는 암호를 일단 걸어놓고 그 날 밤에 ‘몰컴’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아이는 펄쩍 뛰었습니다. 정말 아니라고. 더 이상의 의심은 비인도적인 것 같아 일단 용의선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 대신 다녀간 친구들에게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딸아이가 받아적은 암호를 작업 테이블위에 놓아두었다고 하니, 누군가가 장난으로 암호를 바꾸어놓았을 수도, 아니면 의도와는 달리 실수로 건드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 역시 한결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제어판 들어가서 암호변경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역시 더 이상 의심하는 것은 아이의 교우관계에 문제를 초래할 것 같아 거두어 들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PC업체와의 상담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삼성전자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암호를 풀거나 삭제할 수 있느냐, 일부러 제어판에 들어가서 손대지 않아도 암호가 바뀌는 수가 있느냐.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윈도우를 다시 설치해야 한다는 결론을 상담원은 내려주었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을 해보라더니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도리가 없는 일이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경우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간혹 윈도우 불안정으로 인해 암호가 바뀔 수도 있지만 드문 경우라는 것입니다. 

심란해졌습니다. 백업도 안받아 놓았는데 재설치라. 워낙 윈도우 설치 같은 것에는 공포심을 갖고 있는지라, 골치부터 아파왔습니다. 그런데 더 심란한 것은 두 번째 문제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 손을 대야 암호가 바뀐다는 것인데, 아무도 손댄 사람은 없다는 것이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연히 사람들만 의심하는 것 같아, 극히 이례적인 현상으로 믿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문제가 된 PC에는 특별한 파일을 보관하지 않았는데, 딸 아이가 2년동안 모아놓은 동영상 파일들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동방신기> 동영상은 애지중지 하는 것들이었나 봅니다. 

제가 화낼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녀석이 자기 파일들이 다 지워진다는 얘기를 듣더니 너무 슬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드 복구업체에 문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복구가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업체에 맡겨 파일들을 살릴 수 있게 해주려 합니다.  

단, 하드 복구비용은 딸 아이에게 책임지우려 합니다. 원인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분명히 자기가 일을 벌인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책임은 지게 하려 합니다. 동영상 파일들이 다 없어진다는 소식에 낙담했던 녀석은, 모아놓은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복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같은 ‘딜’에 응할 것으로 봅니다. 

PC에 걸어놓은 암호 하나가 이렇게 골치아픈 문제들을 만드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PC 암호 잘 관리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