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경기도의 ‘서울버스’ 앱 차단 문제와 관련하여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한 신속한 문제제기, 그리고 정책변경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는 블로그를 통한 정책비평이 다른 언론들보다 앞서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지난 20일 오전 6시 30분, <연합뉴스>에 ‘외고 입시 `사교육 경험 유무' 중점 평가’라는 기사가 실렸다. “내년도 외국어고 입시에서부터 도입되는 자기주도학습전형에서 지원자들은 `학원수강 등 사교육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제출 서류에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발표된 외고 입시 개편안이 도리어 사교육을 유발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 주요 전형요소인 학습계획서와 학교장 추천서에 `사교육 경험 유무'를 기재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20일 밝혔다‘고 전하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검색을 하다가 이 기사를 본 나는 학생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정말 말도 안되는 발상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비판하는 글을 곧바로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이 때가 오전 9시 25분. 교과부의 그같은 계획이 아직 많이 알려지기도 전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셈이다. <외고 입시, 사교육받았으면 걸러내겠다니>
나는 ‘외고 입시, 사교육받았으면 걸러내겠다니’라는 글을 통해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들을 모두 거짓말쟁이로 만들 셈인가‘라고 반문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해서라도 합격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모는, 그리하여 학생들을 비양심적인 존재로 만드는 이런 정책은 즉각 철회되어야 마땅하다“고 촉구했다.
그날이 일요일이기는 했지만, 이 글은 다음 뷰의 초기 화면에도 걸리면서 적지않은 방문자들이 읽었다. 그러나 일요일인 관계로, 인터넷 매체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언론들은 이 문제를 주목하지 못한채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언론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나선 것은 다음 날인 월요일부터였다. <동아일보>가 ‘횡설수설’에서 ‘사교육 자백’이라는 글을 통해 교과부의 계획을 비판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칼럼이 내가 썼던 글과 매우 닮은 꼴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내 글과는 전혀 다른 문장과 구성이었지만, 글에 나오는 논점이며 비유, 아이디어 같은 것이 매우 흡사하여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일종의 리모델링인지 잘 모를 정도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인상이고 당사자는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으니, 이 정도로만 언급하겠다.
다른 신문들은 22일 화요일에 가서야 사설을 통해 본격적인 비판에 나섰다.
‘사교육 자백받아 입학전형에 반영하겠다는 건가’ <조선일보>
‘학생들에게 거짓말하도록 유도하려나’ <중앙일보>
‘이젠 학생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겠다는 건가’ <한겨레>
‘]‘사교육 고백’으로 사교육 잡겠다는 꼼수‘ <경향신문>
‘외고 개혁안에 담긴 비교육적 발상’ <한국일보>
그런데 독자들이 이들 사설을 접한 22일은 이미 교과부가 그러한 계획을 철회한 이후였다. 교과부는 ‘사교육 경험 기재’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자 그러한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21일 오후에 밝힌 상태였다. 그렇게 보면 대부분의 신문들은 시점을 놓쳐버린 비판을 한 셈이 되었다. 아마도 일요일을 끼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신문들의 대응이 늦었던 것 같다.
이에 반해 내 경우는 블로그를 통해 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스트레이트 기사가 게재된지 3시간만에 이를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블로그에 올리고 많은 독자들이 읽게 할 수 있었다. 일요일이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독자들이 읽으며 더 뜨거운 이슈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일단 문제제기는 제대로 했던 것 같다.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단촐한 블로그가 일반 언론보다 훨씬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블로그가 사실관계 정보에 있어서는 다른 매체에 의존하게 되지만, 일단 사실을 바탕으로 평가하고 비평하는 일은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블로그라 해도 신속성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해석과 올바른 방향의 비평이 따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블로그를 하고 트위터를 하면서 세상을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특정 사안에 대해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과 시간도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의미있는 연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읽어나가는 노력이 될 것이다. 소수의 메이저신문이 일방적으로 앞서나가며 여론을 주도해나가는 시대는 마감되었다. 이제는 여론형성을 놓고 메이저신문들도 다른 언론매체들 뿐 아니라, 블로그나 트위터같은 소셜미디어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누가 이 변화하는 시대에 여론의 광장에서 승리하게 될 것인지, 흥미로운 한판 승부가 펼쳐지지 않겠는가.
'미디어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수경 아나운서, KBS 동료들을 생각한다면 (30) | 2010.02.02 |
---|---|
김구라와는 정반대인 나의 인터넷방송 행보 (23) | 2010.01.28 |
노홍철 김구라도 위축시키는 방송검열 (22) | 2010.01.20 |
KBS의 세종시 보도, MBC SBS와는 달랐다 (45) | 2010.01.12 |
KBS 시청료 2배 인상이 어림없는 이유 (28) | 2010.01.07 |
KBS 새 노조에서 연락이 왔네요 (22) | 2009.12.21 |
이병헌과 타이거우즈의 차이는 무엇일까 (37) | 2009.12.13 |
KBS PD와 기자들이 가려는 아름다운 길 (20) | 2009.12.10 |
KBS 기자협회 블로그는 접근금지중 (29) | 2009.12.05 |
KBS 노조 홈페이지를 가보니 (48) | 2009.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