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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인수위 때도 소금은 뿌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났다. 최근의 인수위원회 활동방식을 강하게 비난하며 불만을 쏟아낸 것이다. 작심하고 꺼낸 얘기들이다.

인수위를 향한 노무현 대통령의 분노

먼저 신년 인사회에서의 발언들이다.

"정말 힘없고 빽없고 새정부 눈치만 살펴야 되는 국장들 데려다 놓고 호통치고 반성문쓰고 그게 인수위냐."

 "아직은 노무현 정부다. 지시하고 명령하고 새 정부의 정책을 지금부터 준비하라 이렇게 지시하는 것은 인수위의 권한이 아니다."

"만일 한번 더 인사 자제하라는 얘기가 나오면 모욕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다."

 "소금을 더 뿌리지 않으면 나도 오늘로 이야기를 그만할 것이고, 앞으로 계속 소금을 뿌리면 나도 그렇다. 깨지겠지만 상처를 입겠지만 계속 해보자."

그리고 이에 앞서 있었던 국무회의 석상에서의 발언들이다.

"인수위는 정부와 정책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공약을 재점검하고 다음 정부의 정책을 준비하는 곳이다. 이를 위해 질문을 하고 조언을 듣는 곳이지, 지금 집행하고 지시하는 곳이 아니다."

"인수위는 기존의 정책이나 당선자의 공약에 대해 찬반의 입장을 강요하는 곳도 아니다."

인수위가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부정하며 크게 흔들어놓는데 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정권교체기에 있어서 현정부와 다음 정부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노무현 인수위' 때는 어떠했을까?

그러면 5년 전 노무현 인수위원회' 때는 어떠했을까. 당시에도 역시 비슷한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2003년 <경향신문> 1월 11일자에는 '인수위 갈등, 볼썽사납다'는 사설이 실렸다.
 
"인수위원회가 본격 활동에 들어갔으나 여기저기서 잡음과 혼선이 일고 있다. 당선자의 공약사항을 놓고 해당 부처와 인수위간에 힘겨루기 양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일부 부처는 당선자측의 입맛에 맞춰 설익은 정책들을 남발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당선자의 구상을 정책으로 수렴하는 노력은 필요하나, 정부와 인수위가 힘겨루기를 한다든지 국민에게는 말 한마디 없이 그간의 원칙과 정책기조를 바꾸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이에 앞서 <문화일보> 1월 4일자에는 '인수위, 신중해야 한다'는 사설이 실리기도 했다.

"인수위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지 불과 며칠사이 깜짝 깜짝 놀랄 내용의 개혁안들이 마치 줄 잇듯이 터져나오고 있는데 대해서는 인수위가 보다 신중해져야 한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 구조본부 폐지 유도, 상속세 완전 포괄주의 전환, 증권 집단소송 제도 도입, 공직 인사 다면 평가, 장·차관 인터넷 추천, 청와대 비서실 대폭 개편 등이 불과 2, 3일 사이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다. 실제로 추진될 경우 어느 것 하나 엄청난 변화와 파문을 몰고 오지 않을 내용이 없다. 그런 중요한 개혁안들이 어떻게 며칠 사이에 만들어질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당시 인수위 활동과정에서도 과욕이 무리를 종종 낳기도 했다. 인수위 활동 초반, 정부 각 부처에 노 당선자의 대선 공약집을 요약해 돌린 뒤, 부처별로 공약 실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당선자 공약 이행방안 마련을 각 부처에 사실상 지시했던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수위에 대한 각 부처 업무보고가 계속되면서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 실현을 요구하는 인수위 측과, 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부처간의 견해차가 드러나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렸다.

1월9일 노동부의 인수위 사회문화여성 업무보고에서는 보고가 시작된 뒤 3분여 만에 인수위 한 전문위원이 산별교섭 추진에 대한 노동부 보고에 격분하여, "개혁 마인드가 없는 이런 보고는 시간낭비"라며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다.

그는 업무보고가 끝난 뒤 회의장에 다시 나타나 노동부 공무원들에게 고성을 내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노동부 업무보고는 당선자의 개혁 의지 반영은 물론 실현 의지도 찾을 수 없다"면서 "노동부가 당선자의 공약을 심사·평가하는 곳이냐"고 성토했다.

정부 부처 질책에 노무현 당선자가 직접 나서

급기야 노무현 당선자가 직접 나섰다. 노 당선자는 1월 1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각 부처의 업무 보고 내용과 태도에 대해 질타했다.

"부처 보고서에 공약에 대해 '되고, 안되고'하는 결론을 먼저 제시하는데 이는 적절치 않다"면서, "부처는 공약 정책의 심판자가 아니며 결정은 다음에 내가 하겠다"고 부처공무원들을 비판했다. 부처의 찬반 입장 표명을 사실상 '월권'으로 규정한 것이다.

당시 인수위 업무보고과정에서 일부 부처가 당선자의 공약에 대해 소극적이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 인수위와 갈등을 빚은 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각 부처가 공약 실현 의지를 보일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노 당선자의 질책은 14일에도 더 강도높게 이어졌다. 일부 부처에서 입법사항 혹은 예산 확보의 어려움 등을 들어 인수위 방안에 대해 비토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대해 “잘못된 불평”이라고 비판했다. 인수위가 당장 입법이나 예산을 고려해서 정책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며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예산 운운하며 정책조율을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못박았다.

인수위의 활동에 대해서도“신문을 보면, 인수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나온다”며, “인수위는 구체적인 정책을 하나하나 결정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우리 국가의 큰 방향과 정책적 흐름을 설정해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수위와 부처간의 갈등이 논란을 빚자 교통정리를 시도한 것이다.

당시 노 당선자와 함께 대선을 치렀던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인수위에 대해“정부의 일을 파악해 당선자에게 보고하는 선에서 그쳐야 하고, 정부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혼란을 일으키면 안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인수위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정책들에 대해 백지화, 재검토, 사업축소, 속도조절 등으로 줄줄이 제동을 걸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권 인수인계, 성숙한 모습 보여야

이렇게 5년 전의 '노무현 인수위'와 지금의 '이명박 인수위'를 비교해보면 논란이 되는 문제들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수위와 정부 부처 사이의 갈등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상대가 하면 불륜이라고 외칠 일은 아니다.

물론 지금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차기 정부 사이의 정책 차이가 워낙 크다. 5년 전에야 같은 집권세력 내부에서 대통령이 바뀌는 수준의 정권교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10년만에 정권이 진보에서 보수로 넘어가게 되었기에, 정책기조 자체가 크게 변화되는 상황을 맞게된 것이다.

그런 마당에 정책을 둘러싼 입장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로가 자신의 정책이 옳다고 믿는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과 갈등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누가 옳은지 한판 붙어보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잘못이다. 국민들은 성숙하고 질서있는 인수인계를 원하고 있다.

이미 대선이 끝난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다투는 모습을 보고싶지는 않다. 서로가 감정을 배제하고 자극하지 말고, 성숙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민에게 볼썽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제는 '유종의 미'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