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있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지난 이명박 대통령 시절 한 차례만 대통령이 참석했을 뿐 줄곧 대통령없는 기념행사로 치러져 ‘5.18 홀대’ 논란이 빚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앞으로도 박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계속 참석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5.18 기념식 참석은 국가보훈처가 촉발시킨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빛이 바래고 말았다. 광주의 5월 단체들과 시민들, 그리고 야당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보훈처는 끝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합창으로 대신한채 기념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5월 단체들과 광주시의회 등은 기념식에 불참하여 파행이 빚어지고 말았다.
보훈처의 행동은 5.18 정신에 무지한 소치이자 몰상식한 관료적 보신주의의 소치이다. 5.18 기념식은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그 실질적인 주인공은 5.18 유족들, 5월 단체들, 그리고 광주시민들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문제가 따르는 상황이 아닌한, 기념식은 최대한 이들이 원하는대로 치르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며 순리이다.
그런데 보훈처는 끝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대체 제창을 허용하면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런 것일까. 보훈처가 설명이라고 내놓은 얘기가 기가 막히다. 정부의 기념행사에서 주먹을 쥐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참으로 궁색한 설명이다. 그래서 광주시는 주먹이 문제라면 태극기를 들고 부르면 되지 않느냐는 대안을 제시했고, 실제로 기념식 때 일어서서 노래를 따라 부른 사람들 손에는 태극기가 쥐어져 있었다.
보훈처가 한사코 제창을 피하려했던 것은 박 대통령의 참석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제창이 있게 되면 박 대통령이 함께 부르는지 취재진들이 주시할 것이고 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그런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만약 그런 고려였다 해도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은 합창 때 손에 태극기를 들고 일어섰지만 곡은 따라부르지 않았다. 반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일어서서 노래까지 따라부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면 되는 일이다. 대통령에게는 그 곡이 낯설어서 따라 부르지는 않고 그냥 일어서서 태극기만 흔들고 있어도 책잡힐 일이 아니고, 여당 대표가 곡을 따라 부른다 해서 보수층으로부터 책잡힐 일 또한 아니다. 그런 것이 기념식의 본령이 아닌 이상,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보훈처의 납득할 수 없는 결정으로 인해 기념식의 관심은 온통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때 누가 일어섰고, 누가 어떤 모습으로 따라 불렀느냐 하는데로 향했다. 가십성 얘깃거리가 주요 관심사가 되어버리는 비정상적인 광경이었다.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냐 마느냐,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따지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소모적인 논쟁이다. 보훈처가 5.18 정신이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했다면 그렇게는 못했을 일이다. 이 소모적 논쟁과 기념식 파행으로 인해 박 대통령의 참석조차도 빛이 바래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내년부터는 5.18 기념식에서 이런 부적절한 논란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5.18 기념식은 광주에서 있었던 그 날의 항쟁을 기념하고 그 희생자와 광주시민들을 위로하는 자리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대로 치러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도리이다. 5.18 기념식이 외형만이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온전한 행사도 치러질 수 있기를 박근혜 정부에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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