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당국회담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이 눈길을 끌고 있다. 쟁점은 회담에 참석할 북측 수석대표 문제. 북측의 수석대표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우리 정부는 회담 직전의 상황에서는 이례적으로 북한에 대해 강경한 얘기들을 꺼내놓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저쪽에서는 국장 나오는데 우리는 장관 나가라고 하면 (되겠느냐). 그건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국제 스탠더드가 적용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북측 수석대표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하지 않을 경우 우리 수석대표의 '급'도 낮추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대표단 명단 통보 내용에 따라 우리 수석대표가 류길재 통일장관 대신 차관 혹은 그 이하의 인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우리 정부가 이렇게 김양건 부장의 참석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가 남북문제를 총괄하는 책임있는 인사라는 점 이외에,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장관급 회담시 문제가 되었던 남북 수석대표간 '급' 차이에 대한 논란을 바로 잡고 박근혜 정부에서의 새로운 틀을 잡겠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원칙적이고 소신있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향후 남북대화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할 뿐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얻어나간다는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회담 직전에 나타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이같이 강경한 입장은 자칫 어렵게 만들어진 남북대화의 동력을 반감시키게 될까 우려된다.
우선 북한의 통일전선부장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 우리 정부는 통일부장관과 ‘급’이 맞는상대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지목하고 있지만, 당(黨) 국가 체제인 북한은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를 겸하는 통일전선부장직을 우리의 장관급보다 더 높은 자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과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도 우리는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했지만 북측은 내각 책임참사가 나선 이유도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이렇게 남북 간에 인식의 차이가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상대의 대표까지 지정하면서 회담의 분위기를 냉각시키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번 회담 추진과정을 통해 드러난 우리 정부의 속내이다. 이번 김양건 참석 문제도 그렇고, 회담의 서울 개최나 실무접촉의 판문점 개최 제안에서 나타나듯이 정부는 장소같은 문제에 있어서도 대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왔다. 첫 대화나 접촉을 북한에 가서 하는 장면을 보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양건 참석 문제도 우리 측 판단에 북이 맞추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계속될 남북대화가 결국 협상의 과정임을 생각한다면 협상의 장에서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방식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북한과의 대화에서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야 한다는 정부의 신중함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려가 흐름 자체를 깨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우려는 든다.
지난 과정에서 한반도 위기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전쟁불사의 태도를 보인 북측에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기왕에 북측이 기존의 태도를 180도 바꾸어 당국회담을 제안한 마당에 그에 화답하는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은 이제 남북 공동의 책임이다. 그렇게 대남위협을 계속했던 북한이 우리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여 당국회담을 제안한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체면이 구겨진 일일 수도 있다. 전후 사정이 무엇이든, 북측이 일단 나름대로의 고심 끝에 그런 결심을 했다면 우리도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호혜적인 대화의 정신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수석대표 문제 같은 경우는 그에 대한 남과 북의 인식이 다르다면 굳이 그것을 갖고 갈등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회담을 앞두고 10일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는 ‘협상은 진지하게 하되, 무리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확인했다고 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하여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신뢰 회복’에 초점을 두고 협상에 나설 예정이며, 국민들의 눈높이에 어긋나는 파격적인 제안이나 양보는 없을 것으로 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남북관계를 풀어나가자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고 전했다.
어차피 남북 간의 오랜 단절 기간을 감안하면 서로간의 문제를 단시간 내에 풀 수는 없는 일이다.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분위기에 우려가 드는 것은 혹 북한 길들이기를 위한 강경하고 단호한 대처를 너무 의식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향후 남북대화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양보’보다는 ‘관철’에만 매달리다 보면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동력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할까 우려된다. 진통이 따르더라도 하나씩 다져나가는 것이 튼튼한 기초를 쌓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한반도를 경영하는 리더십은 때로는 그런 것을 넘어서는 통큰 리더십을 요구한다는 점도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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