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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김준규 봉투, 기자들은 현금든걸 정말 몰랐을까

김준규 검찰총장이 돈봉투 파문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이벤트 추첨 상품으로 50만원이 든 봉투를 1차, 2차 합해 모두 10명에게 건넸다. 이렇게 모두 5백만원이 돌려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촌지’가 아니냐는 비판이 들끓었고 결국 김 총장이 유감을 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즉흥적으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지만, 기자들을 상대로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돌렸다는 것은 지극히 부적절한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김 총장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많았는데, 또 다른 당사자인 기자들의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당시 회식에 참석한 기자들은 각 언론사의 법조팀장들이었다고 한다. 나는 법조팀장들이 검찰총장과의 상견례를 위해서 서울클럽에 간 것을 뭐라할 정도로 고지식하지 않다. 앞으로의 취재를 위해서도 필요한 자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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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 ⓒ 유성호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당시 참석한 팀장급 기자들이 정말 문제의 봉투에 현금이 든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김준규 봉투’ 파문을 보도한 기사들을 보자.

  “회식이 끝난 뒤 이 봉투를 확인해 보니, 현금과 수표로 50만원씩이 담겨 있었다. 봉투 뒷면엔 ‘검찰총장 김준규’, 앞면에는 ‘격려’라고 적혀 있었다. 추첨을 통해 8명에게만 나눠주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회식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400만원을 건넨 셈이다.

당시 추첨을 통해 봉투를 받았던 한 기자는 “추첨을 한다기에 돌잔치 때 손님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이벤트 같은 걸 하나 보다 생각했다”며 “집에 돌아와 봉투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인 총장이 설마 현금을 건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한편 김 총장은 지난 3일 문제의 회식이 끝난 뒤 일부 기자들과 식당 옆 카페에서 술자리를 했다. 이 자리에서도 김 총장은 50만원이 든 봉투 2개를 내놓고 또다시 ‘추첨’을 통해 기자들에게 나눠줬다. 결과적으로 이날 저녁 김 총장이 회식자리에서 기자들에게 건넨 돈은, 앞서 식당에서 내놓은 50만원짜리 봉투 8개를 포함해 모두 500만원이다.” <한겨레> 

“김 총장은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추첨 이벤트’를 제안했다. 이어 같은 번호 두 개가 적힌 종이 한 장씩이 기자들에게 주어졌고, 기자들은 이를 두 장으로 찢어 그 가운데 한 장을 조그만 통에 모았다. 김 총장 등 대검 간부 8명은 돌아가며 이 통에 담긴 번호표를 한 장씩 뽑았고, 그 결과 경향신문 등 8개 언론사 기자들이 당첨됐다. 김 총장은 당첨된 기자들에게 차례로 봉투 하나씩을 건넸다.

이 봉투에는 1만원권·5만원권 현금과 10만원권 수표가 섞여 50만원이 담겨 있었다. 결과적으로 회식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400만원이 제공됐다. 이 돈은 김 총장이 수사팀이나 내부 직원 등을 격려하는 특수활동비의 일부로 알려졌으며, 특수활동비는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예산 항목이다. <경향신문> 

“총장은 같은 번호 두 개가 적힌 냅킨을 기자들에게 나눠줬고, 기자들은 이를 찢어 한 장을 조그만 통에 넣었다. 김 총장 등 대검 간부들은 돌아가며 한 장씩 뽑았고 처음 4개 언론사 기자들이 당첨됐으며, 한번 더 추첨해 모두 8명의 기자들이 뽑혔다. ‘격려’라고 쓰여 있는 봉투에는 50만원이 들어 있었다.‘ <서울신문>

이들 기사를 종합해보면 두가지 사실이 확인된다. 첫째, 김 총장이 건넨 봉투 속에는 1만원권, 5만원 현금과 10만원권 수표가 섞여있었다. 둘째, 돈봉투를 건네는 일은 2차 술자리에서도 더 있었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돈봉투가 건네졌을 때 그 속에 현금이 들어있다는 것은 과연 몰랐을까. 50만원이 든 봉투라면 수표뿐 아니라 현금이 들어있을 경우 두툼함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설혹 받는 순간에 몰랐다 하더라도 2차 술자리도 이동하여 다시 2개의 돈봉투를 건넬 때까지도 몰랐을까. 두툼한 느낌이 이상하면 화장실에 갔거나 장소를 이동하는 사이에 봉투 속 내용을 확인했을 사람이 틀림없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물론 봉투를 받은 10명의 기자 가운데서도 정말 현금이 들어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봉투 속에 50만원이 들어있음을 알고서도 침묵하며 그냥 상황을 즐기고 있던 기자들이 있었을 가능성도 대단히 높아보인다. 현금이 들어있음을 알고서도 2차 돈봉투까지 수수방관했다면 이 역시 언론인으로서의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결국 다음날 일부 언론사 기자들에 의해 항의가 제기되고 <한겨레> 등이 이를 보도하겠다고 나서자, 돈봉투를 받은 기자 모두가 이를 반환하거나 기부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그런데 기부는 왠 기부인지 모르겠다. 자기 돈으로 생각했기에 ‘기부’한 것 아닌가) 일부 기자들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그냥 그대로 지나갔을 상황이었다. 

김준규 검찰총장의 행동도 부적절했지만, 그날 기자들의 처신도 개운치가 않아 보인다. 유감표명을 해야할 것은 김 총장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날 회식에 참석했거나 최소한 ‘김준규 봉투’를 받았던 기자들도 유감 표명, 아니 사과를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