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MBC에 최용익 논설위원이라고 있다. 과거 유시민씨가 진행자를 맡았던 시절 <100분토론> 팀장을 맡았었고 그 뒤 <미디어비평> 팀장을 맡았던, 조중동에서는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나도 인연이 있다. 최용익 논설위원이 나를 <미디어비평> 고정패널로 발탁해서 1년 가량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그 때가 2002년 대선을 전후로 한 격동기였다.
그 때 <미디어비평> 시절을 생각하면 최용익 논설위원에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나를 믿고 고정패널을 맡겼는데 아마도 성에 차지 않았을 것 같다. 큰 방향에서는 생각이 같았지만, 최 논설위원은 조중동 비평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나는 <한겨레> <경향>같은 진보언론들도 제한적으로나마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아쉬움을 느꼈을 법하다.
요즘 MBC <마감뉴스>를 보다보면 종종 최 논설위원이 출연하여 논평을 하는 모습을 보게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디어비평> 시절의 일들이 떠올라서 꺼낸 얘기다. 그러나 본론은 그것이 아니고, 최 논설위원의 논평에 관한 것이다.
그는 12시가 넘은 늦은 밤 <마감뉴스>에 나와 추상같은 논평을 하곤 한다. 그의 논평은 거침이 없다. 할 소리는 눈치보지 않고 다하는 모습이다. MBC 보도에 대한 각종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최 논설위원은 직설적인 어조로,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최근의 두가지 논평만 소개하기로 하자.
지난달 29일에 한 논평이다. 미디어법이 무효가 아니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 헌법재판소의 희한한 결정이 나왔습니다.
세간이 비상한 관심을 모아왔던 미디어법에 관한 헌재의 판단을 요약하면 국회에서의 통과절차는 문제가 있지만 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헌재는 대리투표도 사실이고 일사부재의 원칙도 위배했으며 야당 국회의원들의 정당한 투표권도 침해됐지만 그 결과로 통과된 방송법과 신문법의 효력은 인정된다고 결정했습니다.
부정선거는 당선은 유효하다.
쿠데타는 위법하지만 성공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입니다.
이렇게 법과 상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헌재는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헌법질서와 헌법정신의 마지막 수호자로서의 책임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헌재는 권력의 방송장악기도로 지목되어 온 미디어법을 사실상 추인해 줌으로써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원인을 제공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헌재의 무용론이 광범위하게 제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난 3일에는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종편채널 선정에 대한 역풍을 경고하는 내용이 나갔다.
"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에 관한 모순된 결정이,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위법하지만 무효는 아니’라는 헌재결정의 취지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논의재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헌재의 판단은 ‘야당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지만, 법의 효력문제는 국회가 알아서 하라’는 것일 뿐입니다.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은 국회파행을 불러옴으로써 헌법재판의 피청구인이 된 김형오 국회의장입니다.
김의장은 당초 “헌재 결정에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했던 만큼, 침해된 야당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회복시키는 조치인 재심의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헌재결정에 대한 논란이 정리되기도 전에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는 등 미디어법 기정사실화작업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시행령의 주된 내용은,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배타적인 특혜와 규제완화’입니다.
지상파방송에 비해 지나친 특혜로 위헌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마이동풍입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미디어법의 핵심이 조중동 등 친정부 족벌신문들의 방송진출을 위한 것이라고 일찍이 속내를 밝힌바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적어도 겉으로는 공개되는 것을 꺼려왔던 정권과 언론의 은밀한 거래를 대담하게도 까발린 것입니다.
정부여당은 권언유착을 위해,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종편채널 선정이 불러올 역풍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핵심에서 벗어나거나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비판을 하는 내용들이다. MBC를 향해 기계적 중립을 강요하는 외부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견 언론인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실 최 논설위원이 논평에서 한 얘기들은 다 옳은 얘기들이다. 그런데 막상 그런 얘기를 방송을 통해 듣는 우리가 귀를 세우게 되는 것은, 우리 내부에 자기검열의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서슬퍼런 방송장악의 현장에서 모두가 주눅들고 있는 이 마당에 최 논설위원은 거리낌없는 논평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100분토론>과 <미디어비평>을 통해 우리 방송에서 시사프로그램의 새 장을 열었던 모습이 다시 살아난 것 같다.
이제 그는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으로 직접 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최용익 논설위원의 용기있는 논평을 오랫동안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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