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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 김근태의 죽음 앞에 예를 갖추어라

한국 민주화운동의 큰별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30일 별세했다.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정치개혁에 앞장섰던 그의 죽음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통해하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특히 생전에 그의 건강이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안좋았던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너무도 이른 죽음을 더욱 안타까와 하고 있다. 

김근태는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청춘을 불살랐다. 그의 흔들리지 않았던 민주화투쟁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권을 거치는 동안 그는 투옥과 고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섰다. 

돌아보면 그를 투사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은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암흑같은 상황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인 1967, 김근태는 대통령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교내 시위에 참가했다가 군에 강제로 끌려갔다. 1970년 복학한 뒤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련반대 등 학내 시위를 주도했다. 1971년에는 공안당국이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서울대생 국가내란음모 사건의 주모자 중 한 명으로 수배받게 되어, 박정희 정권이 끝나는 1979년 말까지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물론 김근태의 민주화투쟁은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면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그 고난의 길의 출발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다.

  그런 사실을 놓고 볼 때 지금의 한나라당이나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김근태의 죽음과 무관한 위치에 있을 수 없다. 한나라당으로 따지면야 그 전신인 민정당 시절에 김근태가 모진 고문까지 받으며 고초를 겪은데 대한 원죄를 갖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위원장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김근태 등의 민주화투쟁을 탄압했던데 대한 간접적인 책임을 의식할 위치이다. 당연히 과거 시대에 있었던 잘못에 대해 사죄하고 화합을 위한 용서을 빌어야 할 입장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박 위원장도, 김근태의 죽음 앞에서 너무도 의례적인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황영철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며, 유가족들에게도 마음 깊은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고 김근태 상임고문은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시절, 민주화를 위해 큰 역할을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내 일부 쇄신파 의원들이 조문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김근태가 별세한 지 불과 3시간 뒤에 박근혜 위원장 주재로 열린 한나라당 비대위 회의에서는 어느 누구도 김근태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예를 갖추지 않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현재 한나라당 비대위 회의는 최고위원회의를 대신하는 지도부 회의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박 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서야 "깊은 조의를 표하고 명복을 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물었으니 망정이지, 먼저 말을 꺼낼 생각은 아니었던 듯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독재를 하며 민주화투쟁을 탄압하고 있던 시절, 그에 맞서다가 고초를 겪은 김근태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박 위원장은 아버지 시절에 있었던 잘못에 대해, 더구나 아버지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듯한 말을 하는데 대해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가족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화합과 통합을 도모해야 할 정치지도자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박근혜 위원장은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가 되고, 나아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에 자행되었던 독재와 탄압의 역사, 그리고 그로 인해 고초를 겪은 김근태 등에게 사과하고 한을 풀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박 위원장은 김근태의 빈소를 직접 찾아가 그의 죽음 앞에 예를 갖추고, 아버지 시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후기> 박근혜 위원장이 오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했군요. 취재진들에게 "깨끗하신 분이었다"며 "나라를 위해 하실 일이 많은데, 일찍 가셔서 안타깝다,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거 시대에 대한 언급은 없었구요. 그래서 이 글은 그대로 놔둡니다. 제가 말한 '예'는 단지 빈소를 찾아 인사하는데만 그치는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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