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잘못을 빌고 나섰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이끌며 석고대죄 삼배도 하고, 회초리 민생 투어도 하며 정권 교체 실패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어째서일까.
석고대죄의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대위 사람들은 잘못했다며 다니고 있지만, 정작 대선 패배의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할 주역들의 모습은 다르다. 지난 대선을 주도했던 친노 주류 세력은 당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도 세를 모아 도전했고, 비대위원장 인선에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차기 전당대회에서도 당권 경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주류 세력의 몇몇 의원들은 대선 직후부터, 1천4백69만표의 의미를 살려 앞으로도 문재인을 중심으로 나가자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이 모두가,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고 당의 주류 세력으로서의 위치를 포기할 생각은 없는 모습으로 비친다.
문재인 전 후보 또한 그러한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개적인 행보를 시작하는가 하면 트위터 발언들을 쏟아냈다. 역대 대선에서 패배한 유력 후보가 그렇게 빠르게 건재함을 보여주는 모습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쉽지만 충분히 일어설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듣노라면, 문재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느냐를 주시하고 있는 세상의 분위기로부터 둔감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 정권 교체 실패의 역사적 책임을 지역구민들과의 약속 아래로 묻어버리며 그는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충분히 가능했던 정권 교체의 기회를 무산시킨 데 대한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는 모습. 그것이 대선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고서도 민주당의 앞길이 안갯속에 갇혀 있는 근본 이유이다. 민주당의 근본 문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여당을 상대로는 번번이 패배하는 세력이 당내에서는 언제나 승리를 거두는 세력이 되어 있는 현실이다. 이 비정상적인 구조가 혁파되지 않고서는 민주당은 만년 야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민주당 스스로의 힘으로 그러한 구조를 해체시키지 못한다면, 그때는 향후 안철수의 행보가 민주당을 해체시키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으로서는 자기 앞길을 자신의 힘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갖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민주당의 내부 권력 질서가 재정립된 이후 어느 시점에 안철수의 행보가 다시 야권의 주요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안철수라고 해서 어디 정권 교체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겠는가. 물론 그는 후보 단일화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퇴를 선택함으로써 솔로몬의 재판에서 진짜 어머니가 누구였는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의 책임이 컸든 간에, 정권 교체가 실패한 데는 안철수의 책임도 있다.
안철수 전 후보가 다시 정치를 시작한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안 전 후보가 귀국하게 되면 국민에 대한 사과가 일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과의 시기는 너무 늦어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지금, 그에게서라도 진심이 담긴 사과의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일지 모른다.
- <시사저널> 2013. 1. 23.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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