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너무 심하게 싸운다... 보수나 진보가 서로 적이 아니고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둘이 타협점을 찾아서 가는 게 사회발전인 것 같다.”
안철수 교수가 서울대 강연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제가 정치에 참여를 하게 된다면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어떤 특정한 진영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정치에 참여한다면) 공동체의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삼는 그런 쪽으로 하지 진영 논리에 휩싸여 공동체의 가치를 저버리는 것은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과 행보에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의 이념문제,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안철수 교수 (사진=남소연)
한마디로 보수와 진보가 갈리워져 싸우는 한국 정치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양자 사이의 소통과 상호보완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제기가 안 교수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많은 정치인들 혹은 지식인들이 한국사회의 이념적 대립의 문제점을 지적해왔고 보수와 진보 사이의 소통 혹은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왔다. 그러나 그같은 문제제기는 대부분 그 때뿐이었다. 우리의 정치환경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그같이 이성적인 대화와 소통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치의 중요한 고비마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이념적 대결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보수는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색깔론까지 들먹이며 진보를 공격해왔다. 이에 진보 또한 방어적 차원에서 맞공격을 하곤 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화해가 불가능한 적대적인 세력으로 늘 자리해왔다.
그러하기에 안철수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은 기본적으로 옳고 정당하다. 생각해보라. 세상에 우리처럼 낡은 이념대결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사회가 또 어디있겠는가. 20세기와 함께 퇴장했어야 할 낡은 이념대결의 유물을 끌어안고 우리는 지금도 반목하고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내걸고 있는 남한과 여전히 자기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 사이에서도 교류와 협력이 추진되었던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같은 한반도 남쪽 땅덩어리에 살면서 서로가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원수보듯이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소모적인 씨름인가.
이제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보수는 진보에게 빨간 색을 덧씌우기에 정신이 없고, 진보는 그들에게 ‘수구꼴통’이라는 야유를 보내는 적대적 관계는 극복될 필요가 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인정하고, 여론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벌여나가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통합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며, 이것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노력이 통합의 리더십으로 등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가 보수와 진보가 지나치게 싸우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양자 사이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한 것은 타당하다. 그러한 통합의 리더십의 필요성은 그동안 여야를 막론한 많은 정치리더들 사이에서도 강조되었던 바이다. 정권들도 들어서기만 하면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사회통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통합의 과제가 정치적 구호로만 등장했지, 막상 이를 진정성을 갖고 실천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통합의 노력이 강조되었다가도 정치사회적 쟁점을 둘러싼 갈등이 부상하거나 선거같은 정치일정이 있게 되면 다시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박멸해야 하는 존재정도로 몰아붙이며 사활적인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식의 양비론을 펼 일은 전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가 지나친 이념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대한 책임이 보수와 진보 양측에게 똑같이 있다고 양비론을 펴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판결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역사에서 이념대결에 관한한 가해자는 보수였고 피해자는 진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현재의 상황만 놓고 볼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8.15 이후, 특히 6.25 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 진보는 줄곧 보수권력에 의해 탄압의 대상이 되어왔다. 남북분단의 체제는 오랜 세월동안 반공을 지배이데올로기로 유지시켰으며, 보수세력이 장악한 권력은 진보세력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하면서 권력을 유지했었다. 지금이야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진보정당들이, 역시 이념적 공격을 받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정당활동을 하는 정도로까지 공간이 넓어졌지만, 이 정도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하여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박해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보에 대한 보수로부터의 폭력적인 공격은 지금도 일상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들은 사실관계에 상관없이 진보에 대한 정치적 음해를 계속하고, 보수 정치세력은 이를 받아 확대재생산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진보 또한 종종 과거의 이분법적 틀에 갇혀 화석화된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진보는 방어적인 위치에 설 때가 대부분이다. 늘 선제적인 도발은 보수에 의해서 자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을 이해한다면 보수와 진보의 공존을 위해서는 보수의 성찰과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최소한 진보를 향한 폭력적인 도발행위는 사라져야 공존이 터전이 마련될 수 있음을 기본적인 룰에 속하는 문제이다. 이는 결코 공존의 환경이 이루어지지 못한데 대해 책임떠넘기기 차원의 얘기가 아니라, 막연히 구호로서의 공존을 외치는 것을 넘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을 찾자는 얘기이다. 보수의 변화없이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대결이 극복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의 성찰과 변화가 있다면 진보 역시 그에 화답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진보도 마땅히 보수에 대한 적대적 의식을 넘어 공존의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수와 진보의 소통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보수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의 결실이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 구체적으로 말해 보수 정치세력과 보수언론이 그러한 선도적 변화를 도모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번 4.11 총선 과정에서 다시 등장한 새누리당과 조중동의 구태의연한 색깔공세는 그들이 과연 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절망적인 판단을 낳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가 말하는 큰 틀의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아직 공존의 토양이 마련되지 못한, 그래서 진보가 여전히 이념적 공세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에서 그의 방법론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시대를 여는 일은, 단순히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중립적 순결성을 지킨다고 해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안철수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결과를 낳을 선택을 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지난 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자신의 출마여부에 대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세훈 시장 사퇴 이후 한나라당이 다시 서울시장에 당선될 수 있다는 여론의 흐름을 보고 주변에서 걱정들을 많이 해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게 됐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점이다....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의 물결이다, 저도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 어떤 결정도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결정은 절대 안 할 것이다."
그는 최소한 역사의 발전을 위한 정치적 선택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독자후보로 출마해서 야권의 분열을 낳고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확장을 도와주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진보세력 앞에서 “적어도 내가 지금의 여당세력을 돕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식의 양심선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행보에 대해 큰 우려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가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혼자 독자노선을 가서 범야권의 분열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걱정이다. 안철수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4.11 총선을 앞두고 지지의사를 밝혔던 인사들이 다 범야권 인사였다는 점에서, 그가 생각하는 정치적 방향이 어떠한 것인가는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문제이다.
다만 그가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넘어 일종의 제3의 길을 모색하려는 탈이념적 지향이 현재 진보진영의 요구과 어떻게 소통이 되고 조율이 되어야 하는가는 공동의 숙제로 남는다. 범야권은 올해 양대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대체로 진보적인 정체성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더구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가 성사되면서 민주통합당의 경우도 정책들의 좌클릭이 예상된다. 안철수가 보수-진보의 이분법을 넘으려는 생각과 이러한 추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연대를 가능하게 할지, 상호간의 성찰적인 대화와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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