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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안철수의 운명

안철수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미생의 길을 포기했다. 강물이 불어나 목까지 차오르자 그는 교각을 놓고 말았다. 그대로 있으면 죽게 되니 교각을 놓으라며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져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불가항력적인 무공천 약속 번복 결정이 새정치를 포기한 행동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인답게 소통을 통해 논란을 해결한 행동이었는지를 평가하기는 아직 일러 보인다.

사진=폴리뉴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결국은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평가받을 상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좋은 결과를 거둔다면 안철수는 당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감수한 훌륭한 대표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선거가 기대 이하의 결과에 그친다면 그간의 혼돈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을 해야 할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다짐한 대로 지방선거의 최전선에서 사력을 다해 승리를 이끌어낸다면 상황은 곧 반전될 수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를 시작한 이후 자신이 드러낸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던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주관적인 의제 설정의 문제이다. 정치 리더는 분명 정치적 의제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안철수가 꺼낸 의제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보다는 종종 논란의 불씨가 되곤 했다. 새로운 것이어서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찬반 논란이 따르게 되어 있는 지점에 그는 승부수를 던지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무공천 논란은 2012년 대선 당시 내놓았던 국회의원 정수 축소라는 의제와 닮은 꼴이었다. 작심하고 던진 의제가 오히려 자신과 야권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재연된 것이다. 정치인이 승부를 거는 것은 이길 가능성을 내다보고 그리하는 것인데, 안철수는 이기기 어려운 지점에서 승부를 걸곤 했다. 자신의 생각을 보다 객관화해서 판단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다음으로 안철수는 자신이 이제는 뼛속까지 야당의 대표여야 함을 인식하는 데 불철저했던 것으로 비쳐진다. 제1야당 대표로서 그의 일차적 책임은 정권의 잘못과 독선을 견제하는 데 있다. 그러나 권력과 싸우지 않으려는 안철수식 정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정체성에 대한 야당 지지자들의 의구심을 증폭시켜 왔다. 무공천의 진정성은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국정원 문제나 한반도의 긴장위기 같은 문제가 홀대받을 일은 아니었다.

지난날 DJ가 중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뉴DJ 플랜'을 하고 DJP연합을 했던 것은 야당 지지층의 확고한 지지라는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야당 지지층의 신뢰도 만들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중도층이라는 스윙보트(swing vote)에 매달리는, 선후가 뒤바뀐 행보를 보여 왔다. 새정치도 좋지만 야당의 대표라면 자기 지지층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 우선임을 소홀히 했고, 그 결과 야권 지지층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

기반이 극도로 취약해진 야권에 안철수는 여전히 소중한 자산이다. 그마저도 이렇게 우왕좌왕하다가 에너지가 소진되고 만다면 야권의 미래도 밝을 수가 없다. 안철수의 운명에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이유이다. 안철수가 자신을 바꾸겠다고 했던 또 하나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일이다. 기회가 그렇게 여러 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