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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성취 훼손할 정권퇴진투쟁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정권퇴진투쟁 불사 시한으로 제시한 20일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20일까지 재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48시간 비상국민행동'에 돌입하겠다는 것이 대책회의 측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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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를 둘러싼 환경변화


그러나 이러한 정권퇴진투쟁 계획이 힘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근래 들어 열린 촛불집회에는 참여하는 시민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책회의 측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분위기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러 가지 환경변화가 있다. 우선 시민들 사이에서 할만큼 했으니 이제 이명박 정부가 하는 것을 지켜보자는 태도가 적지않다. 어차피 쇠고기 문제가지고 물러나라고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성에는 안차지만 일단 지켜보자는 것이다.


또한 화물연대, 건설기계노조의 파업이 이어지고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예고되면서 사회경제적 난국에 대한 불안심리도 생겨난 상황이다.


그런 반면 대책회의를 비롯한 선도그룹에서는 촛불집회의 정치적 성격을 강화시켰다. 쇠고기 문제를 중심으로 했던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일괄투쟁으로 선회하였다. 거기에다가 20일 이후 정권퇴진투쟁까지 예고된 상태이다. 정치투쟁에 부담을 느끼는 층은 이탈하게 된 상황이다.


객관적인 상황은 촛불집회가 축소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고, 따라서 현단계에서 는 그동안의 춧불집회를 어떤 형태로든 매듭짓고 가는 모습이 필요했다. 좀더 '쿨'하게 말이다. 그러나 대책회의 측은 반대로, 계속 밀어붙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단계에서의 정권퇴진투쟁, 과연 옳은가


과연 가능한 상황인지 모르겠다. 우선 그동안 한마음이었던 시민들이 이제는 분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전개될 정치투쟁에 참여할 시민들과, 참여하지 않을 시민으로 나뉘게 되었다.


물론 참여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투쟁의 정당성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상황에서도 참여시민들은 줄어들 수도 있고, 그러다가 계기가 생기면 다시 늘어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현단계에서 정권퇴진투쟁이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점이다.


정권퇴진투쟁은 현재로서는 국민의 동의가 결여된 상태이다. 쇠고기 협상 잘못한 것이야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하나 때문에 4개월도 안된 대통령을 물러나라고 하는 데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고 있는 추가협상이나 인적 쇄신같은 카드가 해답이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더 밀어붙일 수 없는 것이 '촛불의 딜레마'이다. 정권의 중도퇴진은 헌정질서의 중단과 선거민주주의의 붕괴를 낳고, 우리 정치사회를 악순환의 늪에 빠뜨리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의 정권퇴진투쟁은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재협상 요구를 해왔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권퇴진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협상 선언 자체가 그렇게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설혹 정부가 재협상하겠다고 해도 일단은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행위이다. 미국정부를 상대로 재협상을 한다해도 국민이 요구하는 내용들이 관철될 수 있을지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재협상 선언 자체가 절대적인 목표가 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촛불집회의 성취를 보존하는 길은


쇠고기 문제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부 정책 일괄 반대투쟁으로 가고, 다시 정권퇴진투쟁으로 가는 것은 과거 운동권식의 관성적 투쟁이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분열이 생겨나고 촛불은 왜소화되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2008년의 촛불집회가 거둔 위대한 성취는 상당 부분 훼손될지 모른다.


이제는 촛불집회를 통해 모아진 시민들의 힘을 보존하고, 앞으로 시민들의 힘이 또 필요할 때는 다시 나설 수 있는 존재로 남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내친 김에 촛불의 힘으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려 해서는 그 가능성마저 잃게될지 모른다.


촛불시위를 목도한 많은 사람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예찬하고 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로 표현된 '거리의 정치'는 시민의 목소리를 들려주지만,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는 없는 숙명적 한계를 안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긍정성은 대의민주주의, 그리고 선거민주주의와 결합되어야 그 의미를 온전하게 살릴 수 있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가 아무리 제 구실을 못한다해도 그 역할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촛불민주주의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촛불은 국민의 소리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렸고, 그렇다면 공은 제도정치의 영역으로 넘겨야 할 때이다. 정부와 정치권과 국회가 아무리 못미덥다해도, 제도정치의 역할을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강압하고 이끌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 촛불은 일시적인 대안이지, 지속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촛불의 과잉' 막을 '촛불의 절제'도 필요


이번에 거둔 촛불의 성과가, 앞으로 모든 문제를 거리에서 해결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질 일은 아니다. '촛불의 과잉'을 막을 수 있는 '촛불의 절제' 또한 필요하다. 쇠고기 문제와 같은 국가적 현안이 대의정치를 통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 정당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수많은 사안마다 입장을 달리한다고 해서 그 때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는 우리 사회가 만성적인 시위 속에서 물가고, 경기침체, 저성장, 정국불안이 뒤엉키는 고통의 터널로 들어가게 되는 수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의 위기를 넘어선 국가의 위기가 우려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보수. 진보의 이념적 차이를 떠나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문제이다.


오늘의 사태를 낳은 책임은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앞길에 대한 책임은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우리 시민이 함께 지고 가야 할 상황이다.
 
이번에 거둔 촛불집회의 성과가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서로의 사려깊은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20일 이후로 예정된 정권퇴진투쟁 계획은 일단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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