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only

국순당의 '이명박 줄서기', 백세주에 취했나?

"열둘보다 나은 둘도 있소."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이 떨어져 속이 타던 이회창 후보가 들으면 열불이 날 소리다. '열둘'은 기호 12번 이회창이요, '둘'은 기호 2번 이명박으로 들릴 상황 아닌가.


백세주로 유명한 국순당의 12일자 신문광고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이회창 후보 측은 "공개적이고 노골적인 방법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적 의도가 명백히 담긴 광고"라고 반발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제품광고인가, 선거광고인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국순당에 대해 이 광고에 대한 중단 명령을 내렸다. 이런 광고를 하게 된 배경과 이유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선관위는 밝혔다.


국순당 측은 “대선 이슈에 빗대서 신제품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광고를 통해 특정 후보를 비방하거나 강조할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광고를 놓고 어디 '검증'을 해보자.



광고의 상단에는 선거용 어깨띠를 두른 열두개의 연필들이 세워져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열두명의 후보들을 뜻하는 것이다.


문제는 "열둘보다 나은 둘도 있소"라는 제목, 그리고 "뽑아달라는 사람은 많은데 뽑고 싶은 사람이 없소. 고만고만한 열둘보다 둘이라도 서로가 전혀 다른 맛과 개성을 지닌 국순당 후보들은 어떻소?"라는 카피이다.


그런데 이게 참 묘하다. '고만고만한 열둘'은 사실 기호 12번 이회창 후보를 가리켰다기 보다는, 12명의 후보 모두를 싸잡아 가리킨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국순당 측의 해명이 그것이다.


사전적 어법으로 따지면 그런데, 광고를 보고난 느낌은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12번보다 2번이 낫다는 느낌을 던져준다. 절묘한 내용이다. 뜯어보면 위법은 아닌 것 같은데, 던져주는 느낌은 강한 정치적 인상을 심어준다. 위장, 위장 하는데, 이 또한 '위장 제품광고'라는 논란이 따를 소지가 있다.


이명박 후보 힘실어준 겁없는 광고


'기호 12번'이 갖는 불만과는 별개로, '둘'이 더 낫다는 카피는 기호 2번 이명박 후보 편들기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물론 광고상으로는 '둘'은 '기호 2번' 이 아니라, '백세주'와 '백세주 담'이라는 두 개의 제품을 가리킨 것이다. 이 역시 경계선을 넘나드는 절묘한 내용이다.


광고효과로 따지면 사회적 이목을 끌었으니까 성공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국순당은 선관위의 조사를 받아야 하고,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대선 한복판에 이처럼 겁도 없는 광고를 내면 사고를 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과연 예상 못했을까.


제품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험을 한 것일까, 아니면 겸사겸사 이명박 후보를 밀어주자는 의도가 실린 것일까.


마침 이회창 후보 측에서는 국순당의 배중호 사장이 지난 2000년 12월에 '자랑스런 고대인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들며, 뒷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그래서 배중호 사장의 인물정보를 찾아봤다. 그런데 '자랑스런 고대인상'을 탄 배 사장의 학력에는 고려대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은 연세대를 졸업했고, 연세대 총동문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아마도 고려대에서는 단기과정같은 것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느다란 끈이 작용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오해일까. 다만 결과적으로 백세주 광고가 이 땅의 애주가들에게 '기호 2번이 낫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게된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제 정신이었을까. 국순당이 백세주를 마시고 취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여러분이 배심원이라면 국순당의 광고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리겠는지, 한번 내친 김에 여기서 '댓글 판결'을 내려보면 어떨까. 대선이 너무 싱거워지니까 느닷없는 흥미거리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