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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위 출신의 이경숙 인수위원장이라?




이명박 당선자의 첫 인사에 흠집을 내려고 꺼내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당선자가 시작도 하기 전에 발목이나 잡으려고 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왜 하필이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출신 인수위원장인가.

이명박 당선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사실상 낙점했다고 한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한 조만간 발표가 있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경숙 총장의 강점들은 알겠다

언론들은 이 총장이 갖고 있는 강점들에 대해 여러 소개를 하고 있다.

1994년 숙명여대 총장이 된 뒤 무려 네 번 연임을 한 최장수 총장이다,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왔다, 현모양처(賢母良妻) 이미지의 숙명여대를 '글로벌 리더 양성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대학발전기금 1000억원을 조성해 경영능력도 인정받았다......

한마디로 숙명여대를 혁신으로 이끈 최고경영자(CEO)라는 점에서 이 당선자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사상 최초의 여성인수위원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또 하나의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대학총장으로서 능력과 수완을 발휘해왔고, 학교 안에서의 신뢰가 그처럼 두텁다면, 그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문제는 그의 과거 전력. 이 총장은 숙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1980년 국보위 입법위원으로 참여했다. 국보위는 당시 전두환이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한 직후 신군부의 권력장악을 정당화하고, 신군부 집권의 밑그림을 만들기 위해 만든 기구였다.

1980년, 국보위의 의미를 몰랐던가

국보위가 발족한 80년 5월 31일은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신군부의 총칼에 학살당한 직후였다.  그때 이경숙 총장의 나이 30대 후반. 신군부가 자행한 학살의 의미를 모를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성 정치학 박사 3호'라는 희소성 덕택에 그는 국보위 입법위원으로 발탁되었고 거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어 신군부가 만든 민정당의 전국구로 11대 국회의원이 된다.

<신동아> 2006년 4월호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 총장의 설명이 나온다.

그때는 국가비상 시기였고 끝까지 사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소속 위원회가 외교통일위원회였습니다. 전공 분야였기 때문에 의원활동을 하며 배운 게 참 많았어요. 유엔, 유네스코, IPU 같은 국제회의에 자주 나갔죠. 책에서 읽은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가르쳤는데 제가 4년 동안 국제회의에 직접 참여하고, 외교통일 정책을 다루면서 전공분야의 실무를 배우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국회의원 한 덕으로 만났던 정계, 재계, 관계 인맥이 학교의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죠.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 자문도 하고 사람을 연결해주기도 했죠. 국회의원 경험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전력에 대한 사과 선행되어야

과거 국보위 위원, 민정당 전국구 의원 전력에 대한 죄스러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이다. 이경숙 총장에게는 그저 감사하고 소중한 전력일 뿐이다. 이런 그에게 지금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손에 피를 묻히고 권좌에 오른 전두환세력의 강압통치를 정당화하고 힘을 보태는데 가담했던 행위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시켜서 할 수 없이 했다"는 식으로 매듭지을 일이 아니다.

학교 안에서야 전력논란에 대한 정리없이도 신뢰받는 총장이었을지 모르지만, 인수위원장이라는 자리는 다르다. 더구나 새 당선자의 첫 번째 인사가 아닌가.

과거에 갇혀서 살자는 말이 아니다. 30년 가까이의 세월이 지난 일들이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든간에 이제 털어버리고 손잡을 수 있는 관용의 자세도 우리 국민들은 갖고 있다.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도 과거의 잘못에 대한 당사자의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본인이 과거 전력에 대해 잘못이라고 생각조차하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는 국보위 출신 인수위원장의 등장을 환영해야 하는 것일까.

전두환 시절에 국보위 위원을 지내고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면, 그것은 우리 역사와 국민에 대해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그의 역사의식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경숙 총장이 자신의 전력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하든지, 그럴 의사가 없으면 인수위원장에 기용되지 말든지 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의 첫 단추가 이런 식으로 끼워진다면 그 상처는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