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only

허경영의 인기, 웃을 수만 없는 이유


"8번을 찍으면 팔자가 핍니다.”

대선 현수막에 이 구호를 써넣었던 경제공화당 허경영 후보. 그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이인제 후보에 이어 0.4%의 득표율을 올리며 나름대로 선전했다.

그리고 대선은 끝났어도 인터넷 공간에서의 인기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네티즌들은 그에게 '허본좌'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인터넷에서는 이명박을 누른 허경영

그도 그럴 것이 허 후보는 싱겁기만 하던 이번 대선판에서 재미거리와 웃음을 안겨주었다.'텔미' 이후의 최대 인기곡이 될 것이라며 내놓은 '새나라 노래' 로고송과 결합된 TV광고는 독특한 장면들로 눈길을 끌었다. 대박이었다.

실제로 허경영 후보는 인터넷 공간에서만은 이명박 후보를 제치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동영상 포털사이트 프리챌은 이번 대선 관련 동영상들의 각 후보별 조회수를 집계했더니, 조회수 33만 6952회를 기록한 허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의 이색공약도 화제거리였다. 국회의원 출마자격 고시제도 실시로 자질 높이고 100명으로 축소, 산삼 뉴딜정책 실시. 60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70만원씩 수당 지급, 출산장려금 3천만원 지급, 첫 결혼시 1억원 국가가 무상지원, 2년 이내에 외채완전상환. 유엔본부의 판문점 이전...... 자신의 아이큐가 430이 넘는다고 줄곧 주장하면서 천재 정치’를 표방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식의 실현가능성 없는 공약들이다. 그래도 이야기거리는 되었다. 어이없는 황당공약에 네티즌들이 박수를 쳐준 것이다. 실현가능성이 있든 없든, 들어서 기분좋은 공약들이 많았다.


대선이 끝나자, 그의 홈 페이지 게시판에는 '다음 대선에 다시 나와라, 그때는 꼭 찍어주겠다." "내년 총선에 나와 국회의원이 되라"는 의견들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무릎팍도사’ 게시판에는 허경영 후보 출연 요청이 계속되고 있다.

허경영 현상,  대선판이 오죽 재미없었으면....

그런 분위기에 고무되었는지, 허 후보는 개표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차기 대선 출마 선언을 해버렸다.“내가 이번 대선에서 떨어지더라도 현재 인기가 워낙 좋으니 다음 대선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개표가 끝난 후에는 "오프라인에서는 당선자가 이명박씨지만, 인터넷 대통령은 나다. 인터넷에 가상 정부를 만들어 차기 대선을 준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다만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라며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의 얼굴을 5년 선거 때나 다시 보게될까.

인터넷에서의 '허경영 현상'을 이렇게 진지하게 소개하는 것도 엉뚱한 짓인지 모른다. 그냥 황당한 재미거리로, 웃음거리도 넘기면 될 것을 말이다.

물론 그렇다. 그냥 웃고 지나가면 된다. 그러나 오죽 대선판이 재미없고 신이 안났으면, 네티즌들이 이런 구석에서 재미를 느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차라리 현실보다는 가상의 세계에서 대선을 치르고 싶은 정치적 허무주의, 냉소주의의 결과라고나 할까.

물론 허 후보의 광고와 공약을 보고 나도 많이 웃었다. 기발하다고 해야 할까, 어이없다고 해야 할까. 말이 안되는 공약들임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관심과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허 후보. 5년 뒤에 다시 나타난다면 그 때는 또 어떤 황당공약을 들고 나설까.

인터넷에서 나타난 '허경영 현상'은 결국 현실정치에 대한 냉소가 아니었을까. 그러면 우리의 웃음은 일종의 쓴웃음이었을까.  허경영의 인기를 보면서 네티즌들은 웃어도, 우리 정치인들은 웃으면 안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