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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일인데 찍을 사람 없다구요?


드디어 19일 밤이면 새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며칠동안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고 묻는 지인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대선을 경험했습니다만,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어느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찍고싶은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전에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 혼자서만 조용히 찍고오려는 것같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선거일이 다 되었는데도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좋은 후보가 많아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는 행복한 고민은 아닙니다. 찍고싶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정동영 찍으면 노무현 정부 하던 사람들이 나라를 말아먹을 것 같아서 싫다고 합니다. 이명박은 아무래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같아 내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영길이 말하는 진보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닌 것같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문국현은 누구이고 얼마나 정치적 능력을 가진 인물인지 모르겠고, 이인제는 경선불복이 떠올라 싫다고들 합니다. 이회창에 대해서는 아예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두가 이유있는 지적들입니다.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를 잘 알수록 누구를 찍어야 할지, 주저하게 되는 것이 이번 대선판입니다. 모두가 정치평론가가 되어도 될만큼 후보들의 문제점을 잘 꿰뚫고 있습니다.

내 한표가 사표(死票)가 아닌 이유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찍고싶은 사람이 마땅치않으니 그냥 기권을 해버릴까요? 더구나 이번 선거는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싱거운 선거로 꼽히고 있습니다. 후보간의 지지율 차이가 워낙 큰 것으로 나타나, 결과가 예측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투표 안해도 어차피 OOO은 될텐데', '내가 투표해봐야 XXX은 떨어질텐데' 하는 심리가 만연한 상태입니다. 선관위가 역대 대선 최저 투표율을 우려하고 있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그러나 썩 내키지않아도 오늘 우리는 투표소로 가야합니다. 마음에 쏙드는 후보가 없더라도 그나마 낫다고 생각되는 누군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 정치는 이번에 출마한 후보들이 당분간 주도하면서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그 상황을 우리가 피할 수 없다면, 그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이 그래도 나은지, 잘 따져보고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대선은 당선자만 낳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얻는 득표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올린 득표율에 따라 그들 각자의 정치적 힘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들간의 새로운 힘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보면 '사표'(死票)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던진 한표 한표는 우리 정치의 틀을 새로 짜는데 반영되는 것입니다. 당선자가 누구냐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2위가 누구이고 3위가 누구이냐를 가리는 것도 우리 정치의 앞길에 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구나 이번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내년 4월에 총선이 치러지게 됩니다. 각 정당과 후보들의 대선 득표율은 총선판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될 것으로 보입니다.

엉망진창 선거였지만, 그래도 투표는 합시다

돌아보면 정말 부끄러운 선거였습니다. 이번 대선판에는 정당도 없었고 정책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BBK만 있었던 'BBK선거'였습니다. 모두가 BBK 하나에 목을 매달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능력을 겨루는 경쟁도 없었고 선거는 네거티브로 점철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가를 따지기 이전에 정치권, 그리고 모든 언론이 함께 부끄러워해야 할 선거였습니다.

속마음으로 따지자면, 사실 저도 이런 엉망진창 선거에서 투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번 대선이 보여준 광경이 우리의 수준인데. 그것을 인정하고 한표의 권리를 행사해야지요.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하고 싶지않다고 생각했던 분들도 투표소로 가서 한표 찍고 오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그래도 그것이 다음 대선은 '투표하고 싶은 선거'로 만드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