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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이야기

"1인 미디어 전도사 되겠다"

지난 20일에 <스포츠서울닷컴>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시사평론가로서 저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인물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포츠매체와는 본격적인 인터뷰를 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응했습니다.

그 기사가 곧 바로 나왔네요. 제가 말했던 내용 가운데 주로 개인방송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해 주었네요. 당초의 조심스러움과는 달리 제가 강조한 내용들이 상당히 잘 정리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함께 게재된 사진들이 안습입니다. 머리도 헝클어져있고 표정도 영... 사진기자 분이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래서 여기서는 사진은 한장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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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승훈 기자



시사평론가 유창선, 개인방송 5개월차


“잠시만요~ 10분만 앉아서 말씀 나누고 계세요. 이거 설치해야 하거든요~”

시사평론가 유창선과의 첫 대화였다. 그는 한 손으로 쥐어질만한 사이즈의 캠코더를 삼각대에 설치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캠코더 설치를 마치더니 인터뷰 내용이 생방송으로 인터넷에 중계될 것이라며 기자의 얼굴까지 한 번씩 화면에 담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인터뷰 시작 직전. 유창선은 휴대폰으로 트위터에 접속해 인터넷 방송 중계를 알렸다. 이어 캠코더를 똑바로 응시하며 "오늘 스포츠서울닷컴 기자분들이 저에 대한 인물인터뷰를 하기로 약속이 돼서요, 지금부터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의 인터뷰는 그렇게 조금 색다르게 시작됐다.


공중파 끊긴 방송 전업…"5~6개 방송 하루아침에 하차, 생계 위협받아"

유창선은 현재 활동하는 수많은 시사평론가 중 인지도 면에서 단연 최고다. 10년 넘게 시사평론가로 방송계를 누비다 보니 시사프로그램을 듣거나 본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일 정도. 하지만 막상 어떤 계기로 그가 시사평론가가 됐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문 듯 했다.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글 쓰는 일을 어릴 적부터 좋아했죠. 청소년 때 꿈이 기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정작 대학가서는 시절이 하도 수상하다보니 준비할 여건이 되지 않아 이루지 못했지만요. 그래도 학보사 기자도 하고 운동권 생활하면서도 글 쓰는 걸 계속 이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평론가가 된 게 아닌가 싶네요."

방송과는 거리가 먼 과거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만나는 것보다도 TV 혹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더 익숙한 그였기에 방송에는 어떻게 발을 들여놓은 것인지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유 박사는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라며 가물가물한 기억의 보따리를 풀어냈다. "지금 정관용씨가 SBS에서 진행하는 낮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당시 자기가 처음 진행을 맡게 됐으니 스튜디오 와서 정치 얘기 해달라고 전화로 부탁을 하더라고요. 말할 자신도 없고 해서 못한다고 했는데 대단한 것 아니니 한번 오라는 말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하게 됐죠."

그날 방송을 시작으로 유 박사는 지난 10년 간을 방송 전업 시사평론가로 활동했다. 한 달에 5~6개의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을 쏟았다. 그러나 탄탄대로를 걷던 그에게도 제동이 걸렸다. 촛불정국 이후 현 정권의 직·간접적인 압력이 들어온 것. 유 박사는 그간 해오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공중파 방송계에서 제명 아닌 제명을 당했다. "하루에 5~6개 프로그램을 방송하던 사람이 정권이 바뀐 후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어요. 생계의 위협이 왔었죠. 저도 처음에는 언제 다시 공중파에 복귀할지 그것만 바라보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인터넷 인기 개인방송가 변신…"개인방송 1회, 누적시청자 1만명 모아"

모든 방송에서 하차한 후 유 박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궁리했다고 한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인터넷 개인 방송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기까지는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오락 음악 스포츠가 주인인 아프리카TV에서 시사방송이 얼마나 인기를 끌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 "선례가 없다 보니 시작에 앞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 실험적으로 시도해봤죠. 5개월 정도 지났는데 단기간에 고속 성장을 해서 하루 평균 누적 시청자수가 1만 명 정도에 달하는 걸 보면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적으로 유 박사는 매일 밤 11시부터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유창선의 시사난타'(http://www.afreeca.com/sisatv)를 통해 전보다 더 가깝게 시청자들을 만나게 됐다. 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다 보니 그의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게 됐기 때문. "방송할 때는 방송사 입맛에 맞게 말을 해야 하는 면도 있으니까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죠. 그렇지만 개인방송은 법의 테두리만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일상의 고민 같은 것도 이야기 하고 채팅창으로 반응을 즉각즉각 확인할 수 있다보니 전보다 훨씬 시청자와 가까워졌죠."

차분하면서도 즐거운듯 말하는 유 박사. 그런데 그의 방송은 정치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그는 이 질문에 지금은 1인 미디어가 입구에 있는 단계라면서도 벌써부터 반응이 조금씩 오고 있다며 자랑스레 입을 뗐다. "이전이라면 불가능 했을 정치인의 섭외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진행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미 비중있는 정치인과 인터뷰를 했고 8월에는 현직 도지사들과도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에 있고요. 아직은 보편적이지 않지만 가시적으로 뭔가 보이는 걸 보면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웃음)"


1인 미디어 전도사 자청…"풀뿌리 소통 가능케 하는 디딤돌 되고 싶어"

유 박사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만큼 그는 세상이 바뀌었음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무엇보다도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꼬집어 이야기 했다. 과거처럼 큰 방송사에 속해야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아님을 말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느꼈지만 개인방송을 하면서는 그 점을 더 확신하게 된 것. "개인방송을 하면서 자발적 시청료로 성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자본이 있고 큰 방송사가 있어야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게 아니라 네티즌이나 독자들이 먹여 살리는 그런 시대가 가능해지고 있는거겠죠."

세상의 변화를 느낀 덕일까. 유 박사는 인생 계획도 상당 부분 수정했다. 그는 자신이 벌려놓은 1인 미디어를 주축으로 발전과 성장을 이뤄나가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라고 했다. 말을 아꼈지만 부지런히 뛰어야 할 과제인 것 같다고 단호한 표정도 지어보였다. 무엇보다 벌려놓은 일들을 내실있게 운영하고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제가 앞으로 1인 미디어 전도사 역할을 담당하고 싶네요. 먼저 길을 닦아놓고 그걸 개방하고 공유해서 더 많은 시민들이 개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시민 민주주의도 더 활성화되는 것이고요."

유 박사는 한동안 자신의 캐치프레이즈는 "배워서 남주자!"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실천을 위해 다음 학기에는 대학에 강연을 나갈 계획도 세웠다. 풀뿌리 소통을 가능케 하는 1인 미디어의 길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에서다.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기계치라 캠코더 사용법 하나를 익히는데도 설명서를 보고 전화를 해가며 애를 먹지만 저만 이렇게 하고 나면 제 뒤의 길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좀 더 편히 올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방송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보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건 다 함께 나눠야죠.(웃음)"

<스포츠서울닷컴> 박형남·정진이 기자


* 저의 인터넷 개인방송이 매일 밤 11시에 아프리카 TV를 통해 생방송됩니다. 다른 시간대에는 수시로 재방송이 나갑니다. 아프리카 TV 앱을 다운받으면 아이폰을 통해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유창선의 시사난타' 바로가기 http://afreeca.com/sisa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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