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8.15 제66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의 독도 도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맞는 8.15인지라 다시 한번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내일 이명박 대통령도 경축식에 참석하여 취임 후 네 번째 경축사를 하게 될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독도영유권 문제, 남북간의 긴장, 경제위기, 복지논쟁 등의 현안이 산적해있는 시기라 이 대통령이 경축사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관심사이다. 내년 8.15는 정국의 주도력이 여야의 대선주자들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맞게 될 것이기에, 이번 경축사는 이 대통령이 적극적인 국정운영 방향을 천명하는 사실상 마지막 8.15 경축사라 할 수 있다. 사진=청와대
오늘 언론은 이 대통령 경축사의 골자를 미리 보도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이 대통령이 `함께 사는 따뜻한 사회'의 정신을 강조함으로써 국민간 화합과 통합을 호소할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계층ㆍ이념ㆍ지역간 차이를 넘어 모든 국민이 서로 가족처럼 이해하고 약자를 따뜻하게 보듬자는 집권 4년차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지난해 경축사에서 제시한 `공정한 사회'를 한 단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공허하다. 이 내용을 접하는 순간, ‘이 대통령은 끝내 국민화합과 통합을 위한 결자해지의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치게 되는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왜 그럴까. 대통령은 ‘함께 사는 따뜻한 사회’의 정신을 강조한다는데, 국민간 화합과 통합을 호소할 것이라는데 어째서 국민화합과 통합의 기회가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화합과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결단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국민화합과 통합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은 뒤로 젖혀놓은채 입으로만 ‘함께 사는 따뜻한 사회’를 말하고 있느니 말의 성찬에 불과한 것이다.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이란 어떤 것인가. 현정부 들어선 이후 현정부를 반대했다는 정치적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 생존권을 위해 저항했다는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해와 포용의 손을 내미는 대화합 조치를 말한다. 여기에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해당된다. 촛불을 들거나 등록금 반대투쟁에 나섰다가 사법처리된 시민과 학생들, 방송장악에 저항했다가 해고되고 징계당한 방송인들, 생존권투쟁을 벌이다가 사법처리된 용산철거민과 쌍용차 노동자들, BBK 사건과 관련하여 사법처리된 정치인들, 현정부와 코드가 다르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방송인들....
어디 이 뿐인가. 이명박 정부 들어 곳곳에서 쫒겨나고 징계당하고 사법처리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기 이전까지의 10년 동안은 정말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말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권력의 폭력을 고발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언제나 뒤로 숨었다. 법질서 수호를 위한 조치였다고, 개별 사업장이나 방송사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같은 논리의 뒤에는 정치적 반대자와는 공존할 수 없다는, 사회적 약자의 저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가장 정치적인 논리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권력에 맞서거나 비판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모든 사람들을 원상복귀시키는 특단의 조치없이는 국민화합도 통합도 말장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화합과 통합의 주문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할 성질의 것이다. 화합의 조치를 거부하고 있는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국민을 향해 화합과 통합을 호소하는 것은 슬픈 정치 코미디이다.
이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도 1년 4개월. 내년 들어 총선과 대선의 바람이 불 것임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이 주도력을 갖고 국정을 운영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신의 집권동안 많은 정치적 피해자들을 낳았던데 대해 돌아보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넘어 껴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이 유난히도 많았던 한 정권을 마무리하는 예의이고 도리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내일 경축사에서는 역시 그러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말 뿐인 화합이고 통합이다. 진정한 화합과 통합의 기회를 저버리고 임기를 마쳤을 때 이 대통령 역시 불행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많은 사람들의, 아니 시대의 한과 원성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마지막 기회를 놓쳐가고 있는 이 대통령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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