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결국 벼랑끝 승부수를 던졌다. 오 시장은 오늘(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24일 치러지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에 미달하여 개표도 못하게 되면 시장직에서 물러난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오 시장은 주민투표와 시장직 연계를 고민해왔으나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해왔다. 그러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지 않으면 투표율 33.3%를 넘기기 어렵다는 판단 속에서 이같은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중 눈물흘리는 오세훈 시장 (사진= 남소연)
시장직 연계, 한나라당 지지층 결집 위한 승부수
주민투표에 대한 관심이 좀처럼 살아아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래서 3분의 1이 아니라 4분의 1도 어려운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시장직을 연계시켜야만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마도 오 시장은 시장직 연계라는 승부수를 통해 여당 서울시장을 지키려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결집과 투표참여를 기대할 것이다.
단지 무상급식 문제에 대한 관심을 넘어 이후 서울시장 자리가 여야 어느 쪽으로 가게되는가를 결정짓는 투표가 되어버린다면 오 시장의 기대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장 자리를 야당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내년 총선도 대선도 모두 끝장이라는 위기감을 보수층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은 투표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숫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주민투표를 둘러싼 환경은 오 시장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주민투표 자체에 대한 관심이 극히 저조함은 차치하고라도 오 시장의 지지기반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우선은 여당의 조직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서울시당 차원에서 지원을 공언했음에도 막상 여당 조직의 가동은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선거 때면 여당의 실질적 기반이 되곤 하는 관변조직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한다. 이는 서울지역 대부분의 구청장들이 야당 소속이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환경에서 33.3%를 넘기기 위해서는 우선은 여당 조직표가 뭉쳐줘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이것이 여의치 않은 분위기이다.
또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이명박 후보 혹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던 층 가운데 중도층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점도 요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지역의 중산층이라고 해도 대다수는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매달 통장에서 급식비가 빠져나가지 않으니 한결 좋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오 시장이야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돈이겠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요즘 중산층의 살림도 빡빡한 것이다. 정말 통장에서 매달 급식비 빠져나가는데 관심없는 소수 부유가정을 제외하고는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공감의 폭은 크지 않은 편으로 파악된다. 이는 이미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검증된 바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나라당에게는 재앙
이런 상황에서 오 시장이 기대할 것은 한나라당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가게 할 정치적 위기의식의 고조 밖에 없는 것이었고, 이것이 바로 시장직 연계카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오 시장의 마지막 승부수가 한나라당으로서는 재앙의 카드가 될 위험이 대단히 큰 상황이다.
만약 오 시장의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33.3%를 넘기지 못할 경우를 예상해보자. 현행 선거법상 오 시장이 9월 30일 이전에 사퇴를 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당장 10월 26일에 실시된다. 시간을 벌기 위해 사퇴하더라도 9월을 넘겨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겠지만, 그때까지 버틸 명분이 없어보인다.
현재의 정치적 분위기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게 되면 한나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은 한나라당도 인정하고 있다. 10월 보궐선거에서 야당 서울시장이 탄생하게 된다면 서울은 시의회, 자치구에 이어 완전히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완패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대선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오 시장에게 휘둘려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큰 일들을 그르치게 된 데 대한 책임론을 놓고 여권 내부가 내분에 휩싸일 가능성 또한 크다. 한마디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한나라당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는 재앙적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오 시장의 승부수가 먹혀들어 반대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논리적으로는 배제할 수 없다. 오 시장이 승리를 거두어 그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고 무상복지 관련 논쟁에서 한나라당의 목소리가 득세할 가능성 말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투표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 나온 시장직 연계라는 정치적 카드로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남은 사흘은 여권 조직이 움직이고 여당 지지자들을 설득하여 대거 투표장으로 향하게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오 시장은 꺼낼 것을 모두 꺼냈다. 그 사이에 판은 커져버렸다. 한나라당도, 심지어 간접 지원을 시도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다 엮여버렸다. 일은 오 시장 혼자 벌렸지만, 책임과 뒷감당은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되어버렸다. 오세훈 시장은 향후 여권에서 어떠한 존재로 남게될 것인가. 24일 서울시민들이 투표장으로 가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답이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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