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두어야겠다. 나는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와는 일면식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중도성향은, 무난할지는 모르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역동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최근 SNS와 진보언론에서 퍼지고 있는 김진표 공천배제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든, 그렇지않은 정치인이든, 합리적인 판단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기 떄문이다. 세금혁명당이 개설한 '김진표 아웃' 서명운동 홈페이지 ⓒ 세금혁명당
김 원내대표는 분명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으로서 책임져야 할 일들이 있었다. 미디어법 통과를 막지못했던 일, 한미 FTA비준안 처리를 막지 못했던 일 등은 원내대표로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을 수 있다. 특히 근래 들어 조용환 헌법재판관 선출안 부결 등 원내전략의 실패가 드러나곤 했다. 원내에서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던 상황은 원내대표로서 마땅히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원내대표 사퇴 요구같은 것이라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런데 공천배제론이라면 얘기는 좀 다르다. 중진급 현역 의원에게 있어서 공천배제는 사실상 정계은퇴를 의미한다. 원내전략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면 공천탈락보다는 원내대표직 사퇴가 맞는 요구이다. 그런데도 공천배제 요구가 나오는 것은 김 원내대표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해석된다. 관료출신 인사들이 갖는 중도적 성향이 민주통합당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며, 결국 그의 공천탈락이 민주통합당 공천쇄신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 점에서는 맞다. 김 원내대표는 40-50명에 달하는 당내 중도성향 그룹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공천탈락은 민주통합당에서 중도의 배제라는 상징적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선택인가는 의문이다. 언제부터 민주통합당이 중도성향의 인물들을 청산해야 할 정도로 일사불란한 진보정당을 표방해왔던가. 언제부터 중도성향의 인물들과는 공존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 정체성이 분명한 이념정당이 되었던가. 무엇인가 한단계 건너뛴 비약의 장면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여기서도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마디 첨언하자. 이런 말 한다고 해서 내가 중도를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제1야당이 중도적 사고까지는 껴안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정치인의 정체성, 쉽게 말해 이념의 잣대를 갖고 쉽게 규정하고 배제하는 모습에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자칫하면 우리가 그렇게 혐오했던 색깔론의 진보적 버전이 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진표 아웃론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과거 보수로부터의 색깔론을 연상시킬 정도로 바람몰이식이다. 그래도 바로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서 상당한 경쟁력을 보여주었던 인물이었지만, 중도라는 그의 정체성은 단숨에 그를 불출마 대상으로 몰아넣고 있다. 나는 그가 4.11총선에 반드시 출마해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아직 유권자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을 이런 식으로 몰아내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틀린 보도들이 횡행하는 것도 마치 색깔론의 마녀사냥 방식을 닮은 것 같아 음습해 보인다. 김진표 배제론을 사설에까지 올린 <경향신문>은 20일자에서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가 김진표 원내대표의 불출마를 지도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그런 일은 없었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심위 간사인 백원우 의원은 “공심위 내부에서도 그런 것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공심위 외부위원 가운데 일부가 그런 사견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경향신문>은 오늘(21일)자 기사에서도 “공심위는 최근 김진표 원내대표의 총선 불출마를 지도부에 요청한 터다”라고 다시 쓰고 있다. 어쩐지 사실을 과장해서라도 바람몰이식 압박을 하려는 모습인 것 같아 실망스러운 보도태도이다.
4.11 총선의 기본명제는 정권심판론이다. 이는 진보, 중도를 망라해서 함께 동의할 수 있는 명제일 것이다. 이 시점에 민주통합당 내에서 정체성의 이름 아래 굳이 진보와 중도 간의 차이를 끄집어내고 부각시키는 것이 바른 전략인가에 대해서는 나는 의문을 갖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쇄신이, 진보가 중도와의 공존을 거부하고 배제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러한 해석에는 반대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김진표 원내대표의 출마여부에 대해서는 사실 큰 관심이 없다. 지금 이 마당에 내가 그를 지켜주려는 악역을 맡을 이유도 전혀 없다. 그에게 전력상의 다른 결격사유가 있다면 마땅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의 공천배제를 주장하는 것이 정체성, 쉽게 말해 이념을 이유로 하는 것이라면, 자칫 진보의 역색깔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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