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원래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표를 못마땅해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신당의 후보경선이 있기 전까지노 대통령은 기회가 있는대로 손 대표를 비판하곤 했었다.
주로 한나라당에서 안될 것 같으니까 옮겨왔다는 기회주의적 처신의 문제, 그에 따르는 정체성의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느닷없는 '노무현-손학규' 격돌
그러다가 한동안은 조용해졌었다. 손 대표가 후보경선에서 패배한 마당에 굳이 부딪힐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조직개편안 문제를 둘러싸고 노 대통령의 '손학규 때리기'가 재개되었다. 손학규 대표가 노 대통령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대한 거부권행사 시사 발언에 대해 "적절하지 못한 자세"라고 비판하자, 청와대가 반격을 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의 말이다.
"인수위의 정부개편 내용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하는 얘기인지, 손학규 대표의 정부조직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지 매우 의문스럽다."
"'물러가는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간섭하는 것이 부당하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조선일보>나 한나라당의 논리와 하등 다르지 않다."
"몇몇 언론의 논조에 무작정 따라가는, 그런 태도로서 과연 정치 지도자로서 충분한 자세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매우 의문스럽다."
이 정도 표현이라면 노 대통령의 의중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 작심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예상을 넘어서는 청와대의 대응에 신당쪽도 놀란 것 같다. 우상호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이 손 대표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가한 것에 대해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논평했다. 그런가 하면 "손 대표가 인수위와 한나라당의 개편안을 찬성한 것처럼 정체성까지 문제 삼은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왜곡이다, 즉각 사과하라"고 맞받아쳤다.
노 대통령, 전방위 투쟁에 나서나
청와대의 표현이 이렇게 원색적으로나온 걸 보면, 아마도 노 대통령은 "물러날 사람이니 가만있어라"는 식의 주문을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정부조직개편안을 둘러싼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사이의 공방전이 급기야 노대통령-신당 간의 공방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이 모두를 상대로 한 전방위적인 투쟁에 나서는 모습이라고 할까.
노 대통령이 뭐라고 하든 간에, 한달 뒷면 물러날 대통령이 이렇게 이곳저곳과 치고받는 광경을 보이는 것자체가 보기 불편하다. 이제는 자신의 5년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모자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이를테면 하나씩 정리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그것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퇴임의 모습이다.
그러나 요즘 노 대통령은 다시 새로운 투쟁이라도 시작하는 듯한 태세이다. 특히 자신의 주요정책들을 인수위와 한나라당 측이 뒤흔들어놓는데 대해 몹시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노 대통령의 '줄담배'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노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나보고 물러날 사람이니 빠지라고 하는데, 그러면 누가 막을 것인가. 아무도 제대로 막는 사람이 없지 않는가.
그러나 이명박 새 정부의 정책을 막는 것은 이제 노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 야당이 될 정치세력들에게 맡겨야 할 문제이다. 설혹 그들이 못미덥고 제대로 못하고 있어도 기다려야 한다.
노 대통령 나설수록 한나라당만 덕본다
정부조직개편안만 해도 그렇다. 일단은 새 정부가 자신들의 철학에 맞게 국정운영을 해보겠다는 뜻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어차피 서로의 철학이 다른 것이 현실인데, 노 대통령이 새 정부에게 자신의 철학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더구나 아직 국회심의도 시작되지 않았다. 신당 측에서는 국회심의 과정에서의 수정을 다짐하고 있고 한나라당도 협상의 여지는 열어놓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 마당에 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가능성부터 시사하고 나선 것은 옳지 못하다.
대통합민주신당 측에서는 노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 때문에 다시 '이명박 대 노무현'의 구도가 전개되어 정국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장관없이 새 정부가 출범하는 광경이 빚어진다고 하자. 그 화살이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는 불을 보듯이 뻔하지 않은가.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과 야당들의 발목잡기로 이렇게 국정파행이 빚어졌다고 호소할 것이고,그때 4월 총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기다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대선도 모자라서 또 한나라당을 도와주려 하는가. 노 대통령이 정말로 한나라당이 하는 일이 못마땅하다면,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게 최선이다. 노 대통령이 나설수록 한나라당만 수혜를 입게 된다. 그 이유를 노 대통령은 아직도 모르는지,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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