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KBS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사유를 알 수 없는 위로부터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1월 KBS 1 라디오에서 갑자기 하차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KBS는 이러한 저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며 “제작진이 참여하는 편집회의를 통해” 저에 대한 교체결정이 내려졌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두 주장 가운데 하나는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이 상반된 주장은 ‘해석’이 아닌 ‘팩트’(fact)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를 가려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판단을 돕기 위해 먼저 저의 주장, 그리고 그에 대한 KBS의 반박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제가 지난 6일 블로그에 올린 ‘KBS에 블랙리스트가 정말 없다고?’라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 나는 지난 2009년 1월, 당시 고정출연 중이던 KBS 1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았다. 그 때가 개편 시기도 아니고 별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방송에 임박해서 급하게 하차 통보를 하는 것이 의아해서 담당 PD에게 확인한 결과, 사유를 알 수 없는 위로부터의 지시에 따른 것임이 확인되었다.
내가 담당 PD에게 교체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자신도 의아해서 오히려 국장에게 이유를 물었다는 것이고, 그에 대해 교체 지시를 한 국장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국장선까지는 교체 사유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윗선에서 교체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었다...“
<열린토론>에서의 섭외취소 사건 등 다른 내용도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일단 KBS가 반박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자 다른 사례들에 대한 언급은 다음 기회로 돌리겠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러한 설명에 대해 KBS는 다음과 같이 공식적으로 반박했다고 지난 8일 <연합뉴스>가 보도했습니다.
“... KBS 1라디오는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이 참여하는 편집회의를 통해 아이템과 출연자의 중복 등 프로그램 공정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당시에도 연초를 맞아 프로그램의 활력을 위해 출연진 교체가 필요하다는 편집회의의 결정에 따라 유창선 씨를 교체한 것이다."
그러면서 KBS는 "김미화 씨에 이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한 진중권 씨와 유창선 씨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저와 KBS의 주장은 상반됩니다. 저는 사유를 알 수 없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갑자기 교체된 것이라고 했는데, KBS는 프로그램 제작진이 참여하는 편집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물론 교체 사유도 엇갈립니다.
이 과정에는 관계자 몇 사람이 등장합니다. 교체 지시를 내린 라디오1국장, 담당 PD, 담당 작가 등이 그들입니다. 그 가운데 당시 담당 PD와 작가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만 해주면 누구 말이 맞는가는 쉽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당시 담당 PD와 작가는 현재 KBS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입을 열었다가는 당장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공연히 그 사람들에게 부담을 지울 것이 아니라 다른 입증자료를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당시 담당 PD의 증언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자료가 발견되었습니다. 지난해 1월 당시 담당 PD와 작가의 말이 인용된 보도기사들이 있습니다.
먼저 <경향신문> 2009년 1월 13일자에 실린 ‘KBS, 시사프로 패널 하차 외압 의혹‘(부제-유창선씨 갑자기 교체 통보 … 담당PD “윗선 지시”)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유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갑자기 사람을 쫓아내듯이 교체하려면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다든지, 이명박 정부 혹은 이병순 사장과 코드가 안 맞아서라든지라는 사유를 밝혀주는 게 예의”라며 “담당 PD도 국장도 ‘모르겠다’고만 하고 있어 교체 결정은 국장급보다 윗선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승철 담당 PD는 “회사 내부사정이라 자세히 말할 수 없다”면서 “지난 9일 윗선으로부터 ‘바꾸라’는 통보를 받았을 뿐 구체적인 사유는 모른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작가는 “진행 실력과 불가피한 개인 사정 등으로 개편 때가 아니라도 출연자가 교체되는 사례는 종종 있지만 이번 경우는 해당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 담당 PD는 “윗선으로부터 ‘바꾸라’는 통보를 받았을 뿐 구체적인 사유는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제작진이 참여하는 편집회의에서 프로그램의 활력을 위해 교체 결정을 내렸다는 KBS의 주장을 뒤집는 내용입니다.
물론 기사에 인용된 담당 PD의 말은 제가 들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기사의 객관적 정확도를 판단하기 위해 기사를 쓴 유정인 기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유 기자는 자신이 기사로 옮긴 부분은 자신의 통화하며 들었던 내용과 일치하며, 현재 취재수첩에 보존되어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혹시라도 기자가 잘못 듣고 썼다고 우길 일은 아닙니다.
당시 <경향신문> 이외에 <미디어오늘>에서도 저의 전격 교체 문제를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2009년 1월 15일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KBS, 유창선씨도 강제 하차- 11일 돌연 ‘윗선 지시’ 요청받아 ‘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가 KBS 라디오 고정패널에서 돌연 교체돼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유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그동안 출연중이던 프로에서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았다”며 “담당 PD도 ‘갑작스런 윗선의 지시… 사유는 알지 못한다’ 이런말 뿐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담당 연출자인 홍승철 KBS PD는 “유 박사의 글 중 ‘그만뒀으면 한다’는 요청, ‘전날 갑자기 요청받았다’는 설명, ‘지난 정권 때 많이 출연했기 때문’이라는 추정 등에 대해 내가 말한 게 맞다”며 “지난 9일 성대경 라디오1국장이 제안했다”고 밝혔다.“
담당 PD는 제가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들, 특히 “지난 정권 때 많이 출연했기 때문”이라는 추정 등에 대해 자신이 말했던 것이 맞다고 확인했고, 당시 성대경 라디오1국장이 지시한 것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당시 취재를 했던 조현호 기자에 따르면 당시 담당 PD는 좀처럼 말을 안하려고 하는 가운데 그래도 기사화된 말은 확인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미디어오늘>에 인용된 담당 PD의 말 역시 연초 분위기 쇄신을 위해 저를 교체했다거나 제작진이 참여하는 편집회의에서 결정했다는 KBS의 주장을 뒤엎는 것입니다. 당시 저에 대한 전격 교체는 제작진이 참여하는 편집회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성대경 라디오1국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드러납니다. 물론 담당 PD는 일방적인 지시를 받은 것이었음도 드러납니다. 담당 PD는 그 지시를 받고 자신도 의아해서 교체사유를 물었더니, 국장은 자신도 이유는 모른다고 답했다는 것은 이미 제가 블로그를 통해 전했던 바입니다.
이렇게 진실을 담은 기록들이 남아있는데도 KBS는 어째서 그렇게 무모하게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자신들이 어떻게 말하든, 당시 관계자들이 자유롭게 입을 열지 못할 상황에서 너희들이 어쩔 도리가 있겠느냐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거짓으로 진실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KBS는 거짓말에 대해 사과해야 합니다
물론 KBS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권력입니다. KBS가 김미화씨에 이어 진중권씨와 저까지도 고소하겠다고 하자 주위에서 걱정들을 많이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애당초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금의 가감도 없이 사실과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KBS가 유창선이라는 개인을 상대로 아무리 거대한 힘을 사용한다 해도 그것이 진실의 힘을 이길 수는 없음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KBS 출연이 봉쇄되어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운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사실 그런 문제 갖고 KBS와 다툴 생각도 애당초 없었습니다. 제가 정작 분노하고 있는 것은 KBS가 저의 말을 사실무근이라고 매도하며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공영방송의 책임자들이 국민을 상대로 이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 진정으로 명예훼손을 거론할 사람은 저입니다. 저는 저에 대한 KBS의 반박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오늘 공개했습니다. KBS는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데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즉시 공개사과할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 이 내용까지는 가급적 공개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 내용에 등장하는 당시 담당 PD 등에게 혹시라도 난처한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걱정되어 그랬습니다. 그 분은 당시 저에게 "지금 내부 분위기가 그렇다.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며 저에게 정말 미안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조금도 탓하지 않았고 가급적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KBS가 저의 얘기를 사실무근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다른 사람까지 등장시키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설마하니 1년 반 전에 언론에 말한 것을 갖고 불이익을 주겠느냐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 KBS 하는 것을 보니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방송을 업으로 했던 사람이 KBS라는 미디어권력을 상대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평생 KBS에는 발을 끊어야 할지 모릅니다. 다른 곳에서 방송활동을 하는데도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동안 저의 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이 보내주셨던 과분한 성원을 생각한다면, 저에게 닥쳐올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기꺼이 KBS의 거짓을 밝히는데 나서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거짓을 고발하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고소'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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